주일설교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형통의 3가지 Shift(설교요약)

  • 최고관리자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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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강성욱 목사
설교일: 2026년 3월 15일
본문: 창세기 39:2-3, 23

20260315 주일낮예배(설교요약)

 

형통의 3가지 Shift

창세기 39;2-3,23

 

서론

우리는 보통 형통을 일이 잘 풀리고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건강, 재산, 높은 자리와 같은 것을 형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이 있습니다.

시편 1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또 찬송가 384장에서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형통의 의미를 Shift하여

성경이 말하는 참된 형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형통 첫 번째 shift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실제 그의 상황은 전혀 형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들에게 배신당했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통은 환경이 좋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곧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그래서 형통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2. 형통 두 번째 shift

결과가 형통이 아니라 과정이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범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결과로 형통을 판단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형통,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요셉의 형통은

총리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노예로 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 등장합니다.

또 창세기 39장 23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에게 형통이라는 표현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노예의 자리에서도

감옥의 자리에서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그 작은 하루들이 마치 점묘화의 점들처럼

모여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인생의 작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삶입니다.

 

3. 형통 세 번째 shift

누림이 형통이 아니라 나눔이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에게 주어진 형통은

요셉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집과 밭과 모든 소유에까지

하나님의 복이 흘러갔습니다.

요셉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형통이 함께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요셉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요셉의 형통은 담을 넘어 흘러가는 형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형통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창고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형통의 의미를 새롭게 보았습니다.

형통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며,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며,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삶입니다.

요셉의 인생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을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형통이 우리의 삶을 통해

담장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흘러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형통의 3가지 Shift(설교요약)

  • 최고관리자
  •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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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강성욱 목사
설교일 2026년 3월 15일
본문 말씀 창세기 39:2-3, 23

20260315 주일낮예배(설교요약)

 

형통의 3가지 Shift

창세기 39;2-3,23

 

서론

우리는 보통 형통을 일이 잘 풀리고 성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건강, 재산, 높은 자리와 같은 것을 형통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런 기준으로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이 있습니다.

시편 1편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또 찬송가 384장에서도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말하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 성경이 말하는 형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형통의 의미를 Shift하여

성경이 말하는 참된 형통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형통 첫 번째 shift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요셉이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실제 그의 상황은 전혀 형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들에게 배신당했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를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형통은 환경이 좋기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

곧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그래서 형통은 단순히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2. 형통 두 번째 shift

결과가 형통이 아니라 과정이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범사”입니다.

우리는 보통 결과로 형통을 판단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면 형통, 아니면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요셉의 형통은

총리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노예로 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 등장합니다.

또 창세기 39장 23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요셉에게 형통이라는 표현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에서 나타났습니다.

 

요셉은 노예의 자리에서도

감옥의 자리에서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갔습니다.

그 작은 하루들이 마치 점묘화의 점들처럼

모여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인생의 작품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형통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삶입니다.

 

3. 형통 세 번째 shift

누림이 형통이 아니라 나눔이 형통입니다.

 

창세기 39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요셉에게 주어진 형통은

요셉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집과 밭과 모든 소유에까지

하나님의 복이 흘러갔습니다.

요셉이 있는 곳마다

하나님의 형통이 함께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애굽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요셉을 통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을 축복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에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

요셉의 형통은 담을 넘어 흘러가는 형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형통입니다.

우리는 축복의 창고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형통의 의미를 새롭게 보았습니다.

형통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이며,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과정이며,

나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는 삶입니다.

요셉의 인생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형통을 살아가십시오.

그리고 그 형통이 우리의 삶을 통해

담장을 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흘러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