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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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9장;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
- 느헤미야강
- 2019-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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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2(화) 새벽기도회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 <고전 9:24-27>
바울은 오늘 본문 고전9장 24절 이하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신앙생활을 게임, 경주로 비유하여 말씀합니다.
당시에 아테네에서는 이미 올림픽 비슷한 게임들이 이루어져 있었고,
이투미안이라는 체전이 매년 고린도 도시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이런 게임룰, 규칙, 문화에 매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이 게임에 출전하는 것을 커다란 명예로 생각했고,
반대로 최대의 불명예는 게임에 선수로 뛰던 선수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실격당해서 선수로써 자격을 상실하는 것을 최대의 불명예로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문화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기록했고,
그런 이해를 가지고 본문을 읽으면 그 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27절은 그런 뜻에서 읽어보시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라"
이 버림이라는 단어는 다시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바울이 현재 주님께 붙들림을 받아 쓰임을 받고 있는데,
이방인의 사도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쓰임을 받고 있는데,
내가 어느 한순간 자격을 상실하고 주님이 나를 더 이상
쓰시지 않는다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버림이라는 단어는 ‘실격했다’, ‘자격을 상실했다’는 단어닌
disqualify 라는 단어를 사용한 번역본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지금은 나를 쓰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너를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더 이상 주님 에 의해서 쓰임을 받지 못한다
이것이야말로 불명예스러운 일일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우리가 주님께 지속적으로 쓰임을 받으려고 한다면,
첫째로, 우리의 은사나 달란트에 상관없이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절제를 27절 버림 당할까 두려워한다는 말씀과 연결시키면
절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쓰임받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 끝까지 쓰임받고 싶습니다.
이 모습 그대로 쓰임받고 싶습니다.
어떠한 자리에서든지 쓰임받는 인생 살고 싶습니다.
이 쓰임받는 삶을 열망하는 사람마다 절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두 번째로 절제있는 삶을 살려면 목표있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아마도 두가지의 게임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24절에 보시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26절에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그 다음에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고”가 나옵니다.
달음질은 육상경기가, 허공을 치는 것은 권투경기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육상경기는 아무리 빨리 뛰어도 결승라인과 반대로 뛰면 소용없습니다.
정확한 목적지로 달려가야 합니다.
권투선수가 주먹을 휘두르는데 허공을 향해서 휘두르면
결코 승자가 될 수 없습니다.
종종 우리 가운데는 열심은 있는데
목표를 잃어버린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게임은 패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자기 인생을 훈련하지 않는 것은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가 설정되어 있고, 분명할수록
그만큼 절제된 삶을 훈련된 삶을 추구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 했습니다.
이기기를 다툰다는 것은 승리를 위해서 전력투구하는 모습을 나태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일에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식욕도 컨트롤해야 하고, 성적 욕망도 컨트롤해야 합니다.
명예욕도 컨트롤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온갖 이기적인 욕망도 컨트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컨트롤되지 않으면 모든 일에 절제하지 않으면 승리는 없습니다.
이런 절제가 이루어지기 위해선 뚜렷한 목표가 설정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무엇을 위하여 절제하겠다고 말합니까? 23절입니다.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이방인의 사도로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내 사명 완수하기 위하여.
이 복음 전도의 위대한 소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나는 내 자신을 절제하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절제있는 삶을 살려면 상급받는 삶을 열망해야 합니다.
당시 게임의 승자에게 주는 최고의 명예는 월계수 면류관입니다.
단지 나뭇가지이고 시들어보리고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순간의 명예를 위해 시간을 절제하고,
땀을 흘리고 자신을 조절하고 욕망을 조절하면서 그렇게 애를 쓰는데
썩지 아니할 면류관, 영원한 가치를 위해서
노력하고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자기 자신을 절제하며
삶속에 자신을 투자하고 있느냐.
바울은 이 질문을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5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썩지 아니할 면류관은 단지 황금, 금면류관 같은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천국가면 무엇이 가장 명예로운 면류관이 될까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쓰면서
데살로니가전서 2;19,20절에 이런 편지를 씁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여러분은 저의 자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희망의 면류관,
여러분은 저의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면류관은 사람을 말합니다.
천국가서 내가 그렇게 전도하려고 애썼던 사람이
나 때문에 예수 믿고 천국와서
영생을 함께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떨까요?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그 기쁨 이 영원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자랑할 것입니다.
저 사람 제가 전도했어요. 여러분이 주님앞에 서는날
그 놓칠 수 없는 명예를 바라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의 상급이요 면류과일 것입니다.
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자는”
상 때문에 경주자들은 그 마지막 면류관을 위해서 뛰는 것입니다.
내가 투자 한 사람, 내가 눈물 흘려 전도한 사람,
전도하고 세운 그 사람,
내가 양육학 세울 주일학교교사의 자리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믿음의 운동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우리가 전도한 사람
우리가 세운 사람을 만날 때 똑같은 감격을 느낄것입니다.
내가 전도한 사람, 내가 눈물 흘린 사람
내 가 이 땅에서 뿌려진 눈물과 봉사와 정성의 씨들이
천국에서 열매를 맺는 광경을 보았을 때 우리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영원히 기뻐할 것입니다.
그 놓칠수 없는 상급 그 마지막 면류관을 위하여
우리가 살아간다는 사실 이 얼마나 특권입니까?
그것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것을 절제할 수 있다.
내 시간도 다른데 쓰지 않고 보람있는 일에 쓰겠다.
이 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
내가 짤막한 인생이 끝난 날 주님 앞에 섰을 때 부족하지만
저를 쓰셨는데 여기 저의 열매들이 있습니다.
이 열매들에는 나의 눈물과 기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주 앞에 영원을 두고 자랑스러워 할 상급과 명예를 위하여
매일 매일을 절제의 열 매를 안고 들어서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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