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4.6(토) 고전13장_사랑은
- 느헤미야강
-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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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6(토) 새벽기도회
사랑은 <고전13;1-7절 중심으로>
고린도교회는 하나님께 큰 사랑, 많은 은사를 받았으나
그 은사를 가지고 누가 크냐 논쟁을 하였고,
싸움, 경쟁, 대립, 분열에 이르렀습니다.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서로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2;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말씀했습니다.
큰 은사란 성령은사 중 어떤 것이 우열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더 큰 유익이 되는 것을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일것인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교회 신앙공동체에 유익을 수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 아무리 성령의 능력으로 외국어,
혹은 초월적 능력의 언어를 사용한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이방신전에서 울리는 소리나는 구리, 울리는 꽹과리일뿐입니다.(1절)
집에서 아무리 찬송을 부르고, 예배당에서 찬양해도
사랑함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 이상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의 비밀, 경륜의 비밀을 내가 다 통달하고,
홍해 가르고 산 무너뜨리는 믿음있으면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랑 없으면 역시 아무것도 아닙니다(2절).
구제는 다른 사람에게 밥 떠먹여 줄 때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다 넣어 주어도 사랑없으면 아무 유익 없습니다(3절).
내가 가진 모든 것 내어 주어도 사랑없는 행위는 유익이 없습니다.
1-3절의 결론은 모든 은사에는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4-7절은 사랑의 특성을 두 갈래로 규정합니다.
소극적인 정의와 적극적인 정의입니다.
소극적인 정의는 ‘~하지 아니하며’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정의는 ‘~하는 것’으로 규정되는 것을 말합니다.
먼저 소극적 정의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 시작되는 시기가 제일 먼저입니다.
시기가 과하면 자신을 과장하고 자기우월의식에 사로잡히는 자랑으로,
결국엔 실제보다 자기를 높이고 부풀리는 교만으로 나아갑니다.
자기를 부풀리는 것은 타인에 대한 무시, 예의없음인 무례함이 됩니다.
그리고 오직 자기것만 요구하고는 자기 유익을 구하게 되고
자기 뜻대로 안되면 못 견디고 감정을 폭발하는 성냄으로 번집니다.
이어 악한 것을 계산하고 심사숙고하는데 이르게 되고
결국 불의를 기뻐하게 됩니다.
이렇게 시기는 불의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사랑은 이것과 반대로 하면 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시기에는 열심히 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열심이 없는 사람이 시기하지 않습니다.
내가 열심 가질 때 이 열심히 나의 열심인가? 하나님의 열심인가?
이것을 반드시 생각해야 합니다.
다음으로는 적극적 정의입니다.
적극적인 정의의 출발점은 오래참음입니다.
오래참음(마크로뒤메오) 대항하고 싶지만 힘이 부쳐 체념하는 것부터,
능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도 스스로를 누르는
참음까지 모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크신 하나님의 은혜로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오래참으사 말씀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로 인한 영원한 제사드리심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래참음은 나를 위해 오래참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의 삶속에서도 가능한 일이 됩니다.
두 번째로 사랑은 온유라 했는데 여기에서는 ‘친절(크레스튜오마이)’를 뜻합니다.
내가 참으면 힘들게 하는 상대를 보고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그때 진리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다는 말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헬라어 ‘스테고’, 덮어준다는 의미입니다.
헬라어로 지붕을 스테게라고 하는데 스테고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사랑은 상대를 위해 지붕이 되어주는 것입니다.
지붕은 비와 햇빛을 막아줍니다.
사랑은 상대의 약함, 추함, 허물을 덮어줍니다.
참는다는 것이 막아주고 덮어준다는 것임이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야 허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믿을 수 있고
그의 오늘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미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미흡하지만,
이 사람에게 미래가 바람직 하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
하나님 믿고 하나님안에 살아 사랑한다는 것은
오늘 그 시점, 한 순간만 사랑하는 것 아닙니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영원속에서 그 미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미래를 사랑하면 우리는 소망갖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딥니다.
견딘다는 헬라어는 휘포메노입니다.
휘포는 under ~아래에(밑에), 메노는 stay 머물다입니다.
사랑은 상대의 아래에 거하는 것, 즉 상대방의 입장에 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수용할 수 있습니까?
내가 그 사람 입장에 서 있으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이해하다 understand가 나왔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그 사람 처지에 서 보면 그 사람 행동과 말이 이해됩니다.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스타일이 달라도 다 수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견딜 수 있습니다.
바울은 사랑에 대한 적극적 정의에 일곱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첫 단어가 오래참는 것입니다.
사랑은 참는 것에서 시작하여 견디는 것까지 이어집니다.
소극적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하고,
적극적인 사랑은 참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오래 참는다는 ‘마크로뒤메오’는 길게 희생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내가 나를 희생 제물로 바치지 않고서는 오래 참을 수 없습니다.
오래 참는다는 희생한다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하나님께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나님께 제물되고 참을 수 있습니까?
그 토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 힘입어 참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 스스로 때문에 공동체를 허물어 지면 안됩니다.
우리로 인해 그 공동체 더 건강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께 우리 사랑하신 힘 입어 시기함 없이,
오래 참는자 될 때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우리에게 속한 가정, 일터, 학교, 교회 건강하게 세워가십니다.
4-7절의 삶을 사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4절에서 ‘사랑은’ 자리에 ‘예수님’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5절에는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앞에 예수님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래 참고
예수님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성내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예수님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예수님은 모든 것을 참으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믿으며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바라며
예수님은 모든 것을 견디느라.”
이번에는 같은 방식으로 우리 이름을 넣어서 읽어 보겠습니다.
성욱이는 오래 참고
성욱이는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성내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성욱이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성욱이는 모든 것을 참으며
성욱이는 모든 것을 믿으며
성욱이는 모든 것을 바라며
성욱이는 모든 것을 견디느라.
이것이 사랑의 삶입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능력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은사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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