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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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5장_나의 나 된 것은
- 느헤미야강
- 2019-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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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0(수) 새벽기도회
나의 나 된 것은<고전 15;1-11중심으로>
고린도교회는 고린도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으나 문화는 헬라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헬라사상의 특징은 영은 귀하나 몸은 쓸데 없다.
그래서 영은 부활하나 몸은 부활하지 않는다.
영의 부활을 인정하나 몸의 부활을 안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영의 부활과 영혼불멸 사상은 다른 것입니다.
조상귀신을 믿는 사람들은 제사를 드립니다.
영혼이 불멸하다고 믿는 귀신이 구천에 떠돌아 다니다가
죽은날 제사상에 찾아온다고 믿었습니다.
이 영혼불멸을 믿는것과 기독교신앙은 다릅니다.
이들이 영혼불멸을 믿는 것은 단지 영혼이 죽지 않고 떠돈다고 생각합니다.
그 영혼이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로 귀결되는지는 관심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하나님이 인간창조하실때에 영으로만 창조하지 않으시고
흙으로 몸을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살아있는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인간은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기독교신앙의 부활은 죄로 인해 실낙원된 하나님나라,
에덴동산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신앙은 영의 부활과 더불어 몸의 부활을 함께 믿습니다.
에덴동산이 하나님나라의 원형이고
그곳은 영과 몸이 함께 어우러진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내가 온 곳이 하나님나라, 예수 안에서 영육구원,
하나님나라로 회복되다는 것은 분명히 영혼불멸과는 다른것입니다.
이 부활신앙을 가져야 이 땅에서의 삶이 달라집니다.
고린도교회의 문제원인은 바른 신앙을 상실한데서 온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워진 교회입니다.
3절,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바울이 복음을 전했으나 바울도 복음을 받았습니다.
출처가 자기가 아닙니다. 자기도 받은 것을 전한것입니다.
복음의 출처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부활을 이야기하면서 읽게되는 본문의 첫 번째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그 복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그 복음 받은 것이 맞다면 반드시 전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왜요? 복음은 생명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움직입니다. 우리 도구일뿐입니다.
강물이 흐를 때 산이 막히면 돌아갑니다. 어떻게든 흘러갑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만났다면 깨달았다면
그 복음의 능력은 나를 통로 삼아 반드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음에도 한번도 그 복음 전하고 싶은 열정이 없거나
마음 없다면 나는 그 복음의 의미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3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예수가 죽으셨는데 당신이 문제가 있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죄 때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임으로가 아닌 성경대로 죽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대로는 복수로 씌여 있습니다. 성경들대로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죄 대신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성경 한 권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전체에 기록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왜 우리 위해 죽으셔야 했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모든 죄인은 죽어야 합니다.
구약은 죄 지은 인간이 용서받으려면 자기 대신 제물을 죽여야 했습니다.
히브리서에 의하면 그 제사는 매번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고도 문제가 해결안됩니다.
예수님은 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성경대로 행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었다 해도
그것으로 우리가 산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4절말씀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우리 위해 돌아가셨던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님이 완전히 죽으셨고,
사망을 깨트리시고 살아나 부활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죄문제만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마지막에 우리도 신령한 몸으로 부할할 것입니다.
이어 부활의 증인들을 열거합니다.
5절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게바인 베드로에게 보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공동체의 최고의 영적 리더입니다.
가룟유다 후에 뽑힌 맛디아를 포함해 열두명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거가 어디에서 확인됩니까?
달라진 그들의 삶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력하게 죽으셨습니다.
변명도 못하고 짐승 끌려가듯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현장에서 다 도망갔습니다. 요한만 빼고...
그후 겁에 질린 제자들이, 도망간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그 예수를 위해 죽었습니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금전적인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도 아닙니다.
예수 부할의 증인되어 불에 타 죽고 맹수의 밥되고
참수형 당해 죽었습니다.
목이 잘려도 예수가 부활했다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짜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어부들이 머리를 굴린 것이 아닙니다.
부활한 예수를 정말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무력하게 돌아가신 것,
힘없이 죽으신 것은 바보이기 때문이아니라
우리의 죄 때문에 성경대로 돌아가실 수 밖에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크게 예수 부활의 증거를 어디에서 만날 수 있습니까?
6절, 500여명의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게바 한 개인외에도 많은 무리에게 보이셨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이 편지 쓸 때 다수가 살아있었습니다.
이들 어떤 사람입니까?
이후 네로박해때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죽었습니다.
네가 배교하면 살려준다. 회유앞에서 한번만 부정하면 되는데
예수 다시 사셨다고 외치며 죽어갔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했지만
콜로세움 원형극장에서 죽어간 이름없는 그리스도인을
주님은 알고 계실 것입니다.
7절, 예수님은 그의 형제 야고보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가장 어려운 형제들에게도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나셨고
그 결과 초대동동체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8절에 바울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인 잡아 감옥게 가두기 위해
달려가던 자신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보이셨습니다.
과거의 그런 나를 보면 현재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십자가과 부활의 은혜가 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켰는데
그 복음을 듣고서도 어찌 부활을 믿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으로 누구보다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울의 고백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바울과 우리의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날마다 이 고백으로 살고
우리는 날마다 잊고 산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지금의 나는 하나님의 은혜아니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11절,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으니라
예수께서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전파했다.
예수가 우리 위해 죽으시고 우리 위해 다시 살아나심으로
영원한 생명되었습니다. 너희도 이같이 믿었지 않았냐.
내가 전한 내용과 너희들이 믿은 것이 이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11절을 통해 부활신앙의 참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전파하매는 현재형으로 기록되었고,
믿었으니라는 과거형으로 쓰여졌습니다.
내가 이 복음 전할 때 너희는 믿었다. 지금은 어떠니?
과거에 믿었던 그 믿음으로
지금 현재 전파하는 삶을 살고 있니 라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과거에 임한 복음은 현재형으로 전파되어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가 내 안에 사신다고,
과거 믿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전해야 합니다.
바울은 2천년전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고린도, 에베소와는 반대인 우리에게 전하여져 구원백성되었습니다.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부활의 나라에 사는 사람답게 진리를 심는자 되어야 합니다.
2천년 전 바울이 전한 복음을 우리가 거두었듯이,
우리의 전파하는 수고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가 거두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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