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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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6장_영적인 빚을 갚으라

  • 이형원전도사
  • 201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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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고린도 전서 16정의 말씀은 이 책의 마지막 장으로 7장에서부터 시작되었던 질문에 대한 마지막 답변인 성도를 위한 연보, 즉 헌금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바울이 고린도에 방문할 계획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형제들에 대한 문안으로 글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1절에서 4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는 연보에 대한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바울의 사역 가운데 한 가지 일은 바로 헌금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이 헌금은 자신의 생활을 위하여 쓰기 위해 모이게 한 헌금은 아니었습니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을 돕기 위한 헌금이었습니다.

1절의 말씀을 보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갈라디아 교회에 명한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성도는 예루살렘의 성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7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온 선지자 중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는 예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글라우디오 때 그렇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큰 흉년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왔고 안디옥 교회에서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그 헌금을 전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바울은 예루살렘을 위한 연보에 대하여 여러 곳에서 언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15장 26-27절의 말씀을 보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를 위하여 연보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일에 대하여 바울은 영적인 것을 그들로부터 나눠 가졌기 때문에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고 이야기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 바울이 한 번에 하려고 하지 말고 수입에 따라 매주 첫날에 모아 두었다가 하라고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는 것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그가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예루살렘에 대한 연보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는 2가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 2장 10절의 내용을 보면 원사도들 즉,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바울에게 부탁한 일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라는 당부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말을 힘써 지켰는데 이는 전부터 바울도 이 일에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또 그 일에 힘써 행하는 일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야고보, 베드로, 요한, 바울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주님의 제자들이요 사도였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바로 가난한 자들을 생각하는 일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그 분의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그가 가난한 자들 중 특별히 예루살렘의 성도 중 가난한 자를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 이방인 교회가 영적인 빚을 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인정과 함께 그 교회를 모교회로 알고 함께 연대하기 위한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로마서의 말씀이 이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영적인 것을 그들이 나눠졌기 때문에 육적인 것을 나누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돕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들을 위하여 기꺼이 자진하는 마음으로 내 수입을 따라 그 일부를 드리는 것이 마땅한 성도로써의 도리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도 영적인 빚이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 이곳에 있다는 것은 곧 누군가로부터 복음을 전해 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언제인지 저는 일일이 다 알 수 없지만 분명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이러한 영적인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빚을 갚는 방법이 바로 아직도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나의 물질을 드릴 수 있는 것, 또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고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그 누군가를 후원하는 것 또한 우리가 영적인 빚을 갚는 길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이러한 바울의 노력과 이방교회의 연보를 예루살렘에서 귀한 것으로 여겼는가를 생각해 본다면 그에 대한 확신이 바울조차 없었음을 보게 됩니다. 로마서 15장 31절의 말씀을 보면 기도부탁을 하면서 그들이 내가 섬기는 일을 받을 만하게 해달라는 기도의 제목이 나옵니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이방교인들이 주는 도움을 기쁘게 받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거죠. 고마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고마워하고 안하고에 그 핵심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 순종함으로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되어짐은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구제하는 일을 보고 누군가는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구제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교회를 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멈추면 안됩니다. 이 일에 결과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별히 사순절을 지나며 또 다음 주 고난 주간을 맞이하는 이때에 더욱 주위를 둘러보고 또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며 지금도 고난 가운데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는 수많은 주님의 일꾼들을 돌아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나의 작은 물질이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그리고 그러함으로 영적인 빚을 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