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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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특새(2) 행복은 직선위가 아니라 반복에서_막12;1-12

  • 느헤미야강
  • 201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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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7()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2)

 

행복은 직선 위가 아니라 반복에서 옵니다 <11;27-12;12>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여러 가지 비유를 가르치시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셨습니다.

화요일과 수요일 행적은 정확히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약간의 이견은 있으나 마태복음 21;23~25, 마가복음 11:27-13,

누가복음 20-21장은 화요일과 수요일에 가르친 내용이라고 여겨집니다.

 

본문 27절에 이 제자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갔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장로들은 유대 지도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지배 그룹과 예수님이 만났습니다.

28,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일을 행하느냐!’

성전 뒤집어 엎은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막대한 수익을 장사꾼들과 지도자들이 나누는데

허름한 한 사람이 나타나 폭도같은 짓을 한 것으로 본 것입니다.

너에게 성전을 뒤 엎을 수 있는 권위를 준 사람이 누구냐?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의 덧에 사로잡혀 메시야이신 예수를 모르니

그 권위를 인정 안하는 것입니다.

 

그림을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 너 무슨 권위로 이렇게 해, 누가 이 권위를 주었니?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화려한 옷, 보석, 모자도 쓰고 있습니다.

바리새인, 서기관은 그들 신분에 맞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으로 변변치 않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평생 지도자로 살았고 말에도 권위가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는 빈민들과 같이 살았습니다.

권위로 보면 비교불가입니다.

 

29, 예수님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한가지 질문을 할테니 내 질문에 대답하면

나도 너희들 질문에 대답하겠다고 하셨습니다.

30절이 질문내용입니다. 세례요한이 세례하는 것은

그 사역이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이냐 인간으로 한 것이냐?‘

31, 이들이 즉답을 피합니다.

하늘로부터 온 것이면 왜 세례를 안 받는지 할 것이고,

세례사역을 사람이 한 것이라면 요한을 선지자로 안 백성들에게

비난받을 것을 생각하고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무시하셨습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 권위를 인정하면 내가 그분의 말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누구의 권위를 인정하면

그분이 행하는 모든 것을 수용케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지배하는 그들은

성자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분 보내신 하나님의 권위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하와에게 선악과 먹어도 안 죽어.

네 눈 밝아져 하나님처럼 된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보다 사탄의 권위를 더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했다면 노우 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말씀에 권위를 더 두는가?

다른 것에 더 두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권위에 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예수님은

마가복음 12장에 포도원 농부 비유로 설명합니다.

12;1그들은지도자 그룹을 말합니다.

한 사람이 포도원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떠났습니다.

농부는 주인이 소출을 받으려고 종을 보내자 때리고 돌려 보냈습니다.

두 번째도 능욕했고, 세 번째 종은 죽였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마지막에 자기 아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도 죽였습니다.

농부들은 그러면 포도원이 자기들 것이 될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가만두겠느냐?

그때 주님께서 10-11절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보지도 못하였느냐 하시니라

이것은 시11822-23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건축자들의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었습니다.

건축자들은 돌을 보면 어디에 쓰일 것인지 압니다.

건축자들이 한 돌을 보고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로

하나님 나라 주춧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건축자는 대제사장 그룹입니다.

그들이 버린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대제사증 그룹들은 종교 전문가입이다.

자칭 세상과 인생 전문가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종교, 세상, 인생에 관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예수는 버려야 할 돌이었습니다.

갈릴리 빈민 출신, 누더기 옷을 입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모독한것과 같습니다. 그는 죽여야 할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예수가 하나님나라 주춧돌이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예수는 불필요한 돌이라고 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제사장들 그룹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세속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메시야라면 곤룡포, 금관, 백말타고 와야 합니다.

누가봐도 그럴싸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적 기대와 전혀 다른 사람이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속적 가치관을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세속적 가치관은 같이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권위가 살아있는 곳에서는

세속적 가치관이 발붙일 틈이 없어지고,

세속적 가치가 흥왕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가치가 짓밟힐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대제사장 그룹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세속적 가치관에 사로잡히니

예수 권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예수님을 죽입니다.

 

12,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괘씸한 말로 생각들었으나

당장 주리를 틀고 싶으나 사람들 때문에 그날을 피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잡아 빌라도 법정에 넘겼습니다.

 

우리는 어떨 것 같습니까?

하나님 믿는다고 하나 세속적 가치관으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못 박은 삶을 살 수밖에 없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안에서 예수님은 거추장스럽고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 에덴의 동산이라고 합니다.

우리말 동산은 ’ ‘가난이라는 말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가난울타리 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나라 모형인 에덴동산은 울타리가 처진 동산입니다.

세속적 가치관을 차단하는 울타리입니다.

우리 삶에 세속적 가치관을 차단하는 영적 울타리를 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나라 이룰 수 없습니다.

에덴은 회복될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갖고싶어

하나님의 권위를 부정했습니다.

지금 나보다 더 커지고 싶어하는 것이 세속적 사고방식입니다.

그래서 쫓겨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방식으로는 그 안에는 살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세속적 가치관을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권위로 울타리를 치며 사는 삶이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됩니다.

 

이 고난주간의 새벽에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믿는다면서 나는

하나님의 권위를 따라 사는가? 세속적 권위를 따라 사는가?

잘 모르겠다면 내가 자식을 어떻게 키우고 있는지 보면 답이 나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어떻게 키우고 있습니까?

하나님 믿는 엄마마져 오직 더 좋은학교,

출세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 다 쓰시지 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그렇게 하면 다른집 아이보다

분명히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습니다.

그 자녀 세상에서 소위 출세할 수 있습니다.

더 많은 돈 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은 알 수 없습니다.

 

그렇게 자식 좋은 학교 보내고, 출세시켰는데

부모와 자식관계 어그러진 가족이 얼마나 많습니까?

평생 세상 노예로 살지지언정 인생 행복은 모릅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행복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주어진 상황에서 감사하고,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날마다

생명과 삶의 의미가 건져 올려지는 것입니다.

이 의미를 모르면 아무리 많이 가져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행복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할 때

하나님관계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들이 있습니다.

행복은 직선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복속에 있습니다.

직선은 세속적 가치관입니다.

어제보다 수입이 많아야 하고,

어제보다 큰 자동차 타야 하고,

어제보타 큰 집 사야 합니다.

직선위에는 언제든지 내 앞에 누군가가 있습니다.

내 앞을 보면 나보다 더 많이 가지고,

더 출세한 사람이 있습니다.

능력은 내가 더 있는 것 같은데

나보다 더 앞에 있는 사람이 있어 행복해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반복에 있습니다.

똑같은 수입으로 살 수 있고, 평생 똑같은 집에서 살 수 있습니다.

평생 같은 직급, 같은 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권위를 인정할 때 그 반복의 의미는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행복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은

세속적 가치관을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권위를 붙잡고 여러분으로 인해 자녀,

주위 사람들이 참 행복을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