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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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특새(4) 기도는 내 생각으로 시작했다가...마26;36-46

  • 느헤미야강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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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9() 고난주간특별새벽기도회(4)

 

기도는 내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하나님 생각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36-46>

 

1. 오늘은 성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날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씨름하고 고민하셨던 것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 고난주간 목요일에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하셨습니다(14;22-26, 22;14-20).

예수님은 식후에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것은 내 몸이니라’.

또한 잔을 나누시며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언약의 피니라하셨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살과 피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것이니 먹고 마시라.

십자가 위에서 우리 위해 고난당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십자가에 당신 몸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헌신의 참된 의미를 보여줍니다.

 

헌신(獻身)은 드릴 헌(), 몸 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당신의 몸과 피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의 이름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조물로 오셔서 당신 명예를 버리고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시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당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깨끗케 하신 것 때문에 대제사장들에게 욕을 먹고,

빌라도 법정에서 사형당하고 로마군병들에게 조롱당하고

행인들로부터 조롱과 수욕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헌신과 우리의 헌신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주님을 위해 손과 발을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헌신을 통해 우리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명예가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내가 기꺼이 헌신합니다.

그러나 내 명예에 먹칠하고, 오점을 남기면 사양합니다.

이것이 주님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명예와 이름 때문에 헌신하기에 주를 위해 헌신하면서도

하나님의 의가 구현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은 어둠, 죄로 관영하기에 세상에서 의를 위해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매도 당하고,

공격 당할 수 있습니다.

그때 진리위해 욕듣는 것을 두려워않을 때

주님을 위한 헌신의 삶 살고 하나님의 의가 구현됩니다.

 

어떻게 세상욕을 두려워않고 진리위해 수욕당할 수 있습니까?

우리 위해 헌신해주신 주님의 살, 피 먹음을 통해 가능합니다.

요한복음 6;53-57절 말씀입니다.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내 살과 피를 먹어야 내 안에 사는 것.

참 생명으로 살고 나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수욕당하신 그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니

우리 역시 진리대로 살게 됩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이 무슨의미입니까?

말씀과 기도를 먹는 것입니다.

오직 주 말씀통해 주의 살과 피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참 생명을 공급받습니다. 우리는 1주일 한 번만 밥을 먹지 않습니다.

매일 3끼 먹습니다. 1주일에 한 번 말씀듣는 것으로 우리 살 수 없습니다.

매일 매일 말씀통해 먹고 마심으로 주님의 지체로 살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를 떠나서 그리스도인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3. 주님께서 식후에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무릎꿇고 인간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참 섬김의 도를 보이셨습니다.

아울러 또 하나 뜻이 세족식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세족식을 실내에서 하셨습니다.

장정 12명의 발 씻기는 일을 보통일이 아닙니다.

겉옷 벗으셨습니다.

한명 한 명 씻으시고 허리에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 할 때 할때는 잘 모르나 동작 멈추면 더 더워집니다.

실내에서 12명의 발을 씻기시고 끝난 순간에는 더우셨을 것입니다.

13;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예수님은 스승, 제자 발 씻으시고 유훈을 남기시는데

겉옷 벗고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런데 벗어두신 겉옷을 다시 입으셨습니다.

의관정제후 말씀하십니다. 예의를 다 하셨습니다.

이것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는 예의관계 되어야 합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유한한 인생이 무한자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인간에게 먼저 예의 다하신 까닭에

인간도 하나님께 예의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 살리기 위해

당시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으신 것보다

인간을 위한 예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예의 다해 인간 구원하셨습니다.

인간도 하나님께 예의 다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예의를 다해야 합니다.

 

그 예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림으로 드러납니다.

예배는 예절, 절하다. 예의를 다해 하나님께 절하는 것입니다.

예배 단어인 히브리어 샤하’, ‘아바드’,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모두

노예가 예를 갖추어 주인에게 경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인간이 모든 예를 갖추어 절하는 시간입니다.

그것 안다면 주일 예배는 옷 매무새가 달라져야 합니다.

자세, 중심 새로워집니다.

람의 흥을 위한 예배는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만 모든 시간을 다하는 시간입니다.

 

믿음이 예의인 줄 안다면 우리기도도 달라져야 합니다.

평생 우리 기도는 하나님께 명령, 요구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인간에게도 예의를 지킨다면 상대방 말 듣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한 사람만이 자기 이야기 계속하면

그 사람은 예의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이 예의라면 나의 뜻도 아뢰지만

하나님의 말씀도 경청하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세족식후 제자들과 하신 겟세마네에서 기도는

목요일밤에 마지막으로 행하신 일입니다.

26;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22;39절은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다하셨습니다. 이날만 가신 것이 아닙니다.

매일 습관따라 가셨습니다.

그날도 습관을 따라 몸이 감람산으로 가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6;36-37절에 의하면 겟세마네라는 곳에 도착후

다른 제자들은 그곳에 있게 하고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어 내가 고민하고 슬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에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의 기도내용이 무엇입니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39)”

주님이 이 한마디만 기도했었다면 눅22;44절처럼

주님의 얼굴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핏방울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말 죽음을 앞두고 고민하시고 슬퍼하며

인간으로 죽음을 피하기 위한 간절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42).

 

주님은 처음에는 십자가 죽음 피하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끝은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째 동일한 기도를 하시고 일어서셨습니다.

46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어디로 가자는 것입니까? ‘이제 십자가에 죽으러 가겠다’.

십자가 죽음이 준비되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겟세마네에 기도하러 가실때에는 힘들어하시며

십자가 안지시겠다고 하려 가신것인데,

기도하시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 없어지고

죽어야 한다는 담대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가만히 비교해 보십시오.

내가 피곤하여 죽게 되었다 하실때의 얼굴과 이제 일어나 가자 하실 때,

그 때의 얼굴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을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나의 뜻을 고수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뜻을 버리는데 있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드리는 참 의미는

우리의 생각을 고수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을 버리는데 있습니다.

 

이사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내 길은! 내가 어떤 일을 행하고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너희의 길보다 높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늘 기도하기를 내 생각속에 머물고,

내 생각과 길보다 높고 크신 하나님을 끌어내리려 합니다.

기도는 내 생각에서 시작하지만 깨어감으로

땅보다 높으신 하나님 섭리, 뜻 내 삶속에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내 생각에서 하나님생각으로 자신을 채움으로써

오늘 우리를 위한 십자가를 감당하셨습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세가지를 담기 원합니다.

헌신의 의미, 예의를 다함, 기도를 담아

주님 닮아가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