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고전4장_그리스도의 일꾼
- 느헤미야강
-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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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3(토) 새벽기도회
그리스도의 일꾼 <고전4;1-5 중심으로>
고린도교회는 다양한 문제들 앞에 직면해 있었으나
제일 첫 번째 문제는 분쟁의 문제였습니다.
성도들간에 분파(바울,게바,아볼로 등)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분파문제는, 첫째는 내가 누구 라인인가 하는 소속감의 문제였고,
둘째는 어떤 지도자가 더 똑똑하냐 누가 더 많이 아느냐?
세 번째는 누구의 역할이 더 중요하냐? 하는 역할문제,
네 번째는 누가 더 나은 지도자냐? 사람에 대한 판단의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지도자란 어떤 존재인지,
그에 대해서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4장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4;1 그러므로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에서 ‘사람’은 고린도교회 성도를,
‘우리’는 바울 아볼로 게바 등 지도자를 말합니다.
‘여길지어다’은 명령형으로 여겨라입니다.
너희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우리를 마땅히
그리스도 일꾼으로 여기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일꾼’은 휘페레테스(헬), 배 밑창에서 노 젓는 사람을 말합니다.
로마시대에 군함, 싸우는 전투함 같은 큰 배 들이 있으면
배 밑창에는 노예들이 노를 젖습니다. 그 노 젓는 사람이 일꾼입니다.
전함에서 노젓는 사람이 제일 밑에 있습니다.
그들은 배를 저어도 그 배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곳에는 창문도 없습니다.
그 노예들은 노 젓고 배 나아갈때도 배 속력을 결정하지 못합니다.
사령관의 명령을 받은 고수들의 북소리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뿐입니다.
노예는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배는 전진하고,
전투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들에게는 안보입니다.
자기 생명, 인격을 선상주인에게 맡긴 사람입니다.
전투하다가 침몰하기도 합니다.
이들 휘페레테스는 발이 묶여 있어 도망도 못 갑니다.
바울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바울, 게바, 아볼로, 우리 모두는 배 밑창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너희가 우리를 절대화하여 분열하느냐? 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함은 노예인 휘페레테스가 없이는 전쟁을 치를 수 없습니다.
이들 없이 사령관은 원하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승리 영광은 사령관이 얻습니다.
우리도 그처럼 내 인생 속력, 방향, 영광까지 주님께 돌리며 산다면
그리스도인 사이에 문제가 없게 됩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내가 휘페테레스가 되기 싫은 것입니다.
눅1;1,2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사도들을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목격자, 일꾼이라고 표현합니다.
2천년전 로마제국내에서 이스라엘은 변방입니다. 갈릴리는 땅끝입니다.
그곳 출신인 배움이 부족한 사도들에 의해 역사가 바뀌었습니다.
만일 그 사도들이 자기들 힘으로 인생 방향 결정하려 했다면,
자기가 속도를 조절하려 했다면
그들 역사 변화의 통로는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은 가리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낼 때 주님이 역사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일꾼이되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내가 너희 섬기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너희 섬기는 것이지
너희의 종이기 때문에 너희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람을 섬겨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우리는 남편이나 아내, 자식앞에서도 자존심 상하게 됩니다.
사람 자체에도 소망 끊어버립니다.
내가 사람을 섬길 때 그리스도 때문에 섬기게 되면
‘사람들이 네가 나 섬기는 것 당연하지’ 라고 말해도
나는 자존심 상하지 않습니다. 상처받지 않습니다.
상대가 형편없는 인간, 형편없는 상황을 목격해도
그 사람위해 소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요? 나 같은 죄인 살리셔서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처럼
그 사람도 그리하실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2절,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의 종이 마땅히 행할 것, 구할 것을 충성이다.
‘구하다’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내가 의식하든 아니든
이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가 임한 사람은
마땅히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에 대한 응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위해 충성합니다.
주님께 충성하지 않으면 다투지도 않습니다.
문제는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충성한다는 사람 사이에서 일어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충성기준이 무엇인가?
기준 상실할 때 일어납니다.
忠; 중심, 마음, 곧 마음의 중심으로,
誠; 말씀언, 이룰 성. 말씀을 이루다.
충성이란 내 마음의 중심으로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잣대는 말씀밖에 없습니다.
그럴때에만 사람 사이의 갈등, 대립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충성: 피스토스(헬), 형용사로 쓰여졌습니다.
명사로는 ‘피스티스’입니다.
이 단어는 충성, 믿음, 신실 3가지 뜻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세 단어가 따로 구별되는 단어가 없습니다.
바꾸어 사용하고 읽어도 됩니다.
은혜 받았으면 충성해야 한다.
은혜 받았으면 신실해야 한다.
믿음으로 충성한다는 것은 믿음이 신실해지는 것이고,
우리의 삶을 신실하게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력, 생명이기에 그 말씀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충성한다며 말씀 쫓지 않으면 내 욕구, 기분위한 충성일 뿐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똑같이 하나님의 은혜,
계시를 받아 교회를 이루었는데 그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받았음에도
말씀을 쫓지 않은것, 충성 않은 것입니다.
그 말씀안에 신실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니 편 가르고 구별짓는 일들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러나 우리가 말씀안에서 신실함으로 변한다면
상처주고 받지 않을 것입니다.
3절,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이 말씀은 너희가 바울 자신을 판단할 수 있으나
내게는 아주 하찮은 일이다. 신경쓰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직 판단하시는 분은 그리스도이다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아는가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만 하시는 것이다.
5절,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사람은 드러난 것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서 인간의 평가는 다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보이지 않는 것 까지도 감찰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칭찬, 인간의 칭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칭찬은 자기중심, 보이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보이지 않는 것, 절대성으로 평가합니다.
이렇게 볼 때 고린도교회는 무엇을 잘못했는지가 드러납니다.
보이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 판단을 하나 내가 부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다면 분란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안에 휘테르페레스 되는 사람안에서만 모두가 하나되는데
자기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세상 살아가면서 사람 평가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평가도 상대적, 일시적이라는 것,
마지막 평가는 하나님께 맡겨 놓는 것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자기의 관점을 갖지만 그 이면에 다른 것 있음 알고
최종판단을 하나님께 유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나보다 더 많은 아름다운
그 사람에게 있음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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