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고전6장_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 느헤미야강
- 201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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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327(수) 새벽기도회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고전6;1-11절 중심으로>
고린도전서 5,6장은 고린도교회 도덕적 타락에 대한 질책의 말씀입니다.
5장이 음행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탐욕, 우상숭배, 모욕,
술취함 등 갖가지 영적 도적적 타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어 6장은 성도와 성도간의 갈등의 문제를
세상 법정에 가져가는 것에 대해 바울이 질타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끼리 다툼으로 세상법정에서 싸우는 것도 불의하다고 하고,
교인들끼지 세상법정에서 싸우는 것을 방치하는 교회도 불의하다고 지적합니다(1~8절).
이어 고전6;9,10절은, 음행, 우상숭배, 간음, 탐색, 남색, 도덕, 탐욕,
술취함, 모욕하는 자,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했습니다.
이와 같은 범죄들이 고린도교회 성도 속에서 일어난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주님 만나 구원의 기쁨 얻었으나 육신 소욕을 따라 사는 영적 미숙아였기 때문입니다.
절대기준이 내 밖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기준이 되니 내 판단이 맞고 서로간의 갈등이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 본질적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니 정도 차이가 있어야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9,10절의 죄가 그대로 자행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고린도에 만연한 사회 풍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지주의와 에피쿠로스 학파의 사상입니다.
영지주의는 인간의 영혼과 육을 분리하여 육신은 쓸모없다.
고귀한 영혼에 아무런 영향을 못미친다.
육신이 어떤일을 행한들 무의미하다. 본능대로 살아도 됩니다.
두 번째 에피쿠로스 사상는 인간을 물질적 결합으로 보았습니다.
죽음은 물질의 해체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은 물질과 원소로 결합임을 모르고 죽음을 두려움 가지고 산다.
존재의 불안, 감정이 흔들림, 죽음의 두려움 벗어나는 길은
쾌락이다고 했습니다.
본능, 쾌락의 삶은 어떤 죄도 아니라 구원체계가 됩니다.
이것이 교회로 침투해온것입니다.
영지주의, 에피쿠로스 사상이 복음과 연결되니
어떻게 살아도 문제가 안됩니다.
내 마음대로 살아도 아무런 양심가책이 없습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사니까 당연하것이 되었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풍조 따르는 것이 아닌 고치는
생명의 진원지가 되어야 하는데
고린도교회는 세상에 의해 오염되고 만것입니다.
이 교회속에 온갖 범죄 일어났음에도
교회가 잘못된 것 깨닫지 못하는 중증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이 세상 새롭게 하는 생명의 진원지입니까?
세상 방식에 교회가 오염되어 있지 않습니까?
2천년전과 오늘날, 하나님앞에 냉청하게 보면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요한복음 21장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해줍니다.
요한복음 21장은 복음서와 교회역사를 연결하는 고리입니다.
교회가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줍니다.
요한복음 21장 1절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갈릴리로 돌아간 제자들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집니다. 그것은 단지 욕망의 그물질에 불과했습니다.
요한사도는 21장을 기록하며 이곳을 갈릴리로 기록하지 않고
디베랴로 기록했습니다.
디베랴는 주전 25년 헤롯 안티파스가 갈릴리 연안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디벨리우스 이름을 따 ‘디베랴’라고 불었습니다.
로마 황제 지도자가 갈릴리를 디베랴라고 불렀습니다.
한마디로 황제의 바다라는 것입니다.
요한사도가 요한서신에서 14번 갈릴리로 이곳을 기록했는데
2번은 디베랴로 기록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 사건과 이곳 21장입니다.
황제는 인간의 욕망의 상징입니다.
황제는 하고 싶은 것 다합니다.
하고 싶은 일 위해 수만명을 죽일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뺏을 수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디베랴로 한 것은 욕망이 바다라는 것입니다.
복음서 끝인 요한복음이 끝장에서 사도행전 교회로 넘어가는 이야기가
욕망의 바다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21세기, 2019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은 디베랴입니다.
수도원이 아닙니다. 온갖 욕망이 난무하는 디베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디베랴 바다 한가운데서 욕망을 따르지 않고
진리를 따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욕망의 바다에서 빈 그물일 수 밖에 없는 인생,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는 소망의 그물을 건져 올리라고.
그렇게 시작된 것이 사도행전이고 교회의 역사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세속화가 무엇입니까? 세상을 따라간다는 것,
생명과 진리의 법을 쫓지 않고 세상을 따릅니다.
세상 방법대로 살고, 주일 예배 드리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여깁니다.
그러니 교회가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거대한 디베랴 바다, 밤 맞도록 제자들이 그물을 던집니다.
욕망의 바다에서 욕망에 사로잡혀 그물 깃는 나는
작은 한 점에 불과합니다.
이런 존재의 삶속에서는 디베랴 논리는 극복 안됩니다.
로마황제가 힘 있어도 더 힘센이가 뺏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디베랴 바닷가에서 침몰하던 제자들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 욕망의 바다는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욕망의 바다는 생명, 진리로만 밝아지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욕망의 바다라해도,
비록 그 사람이 소수일지라도 그들이 진리,
생명을 쫓을 때 인류역사가 바뀌었다는게 사도행전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적 배경과 오늘날 배경을 이해한 다음
바울음성을 들으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순절 열아홉번째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디베랴 바다입니다.
이 욕망의 바다에서 진리를 건져 올려
역사를 새롭게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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