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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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 15장_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것
- 느헤미야강
- 2019-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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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5(화) 새벽기도회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것 <행전15장>
사도행전 15장 1-5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먼저 본문의 이해를 돕기위해 바울의 고린도전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사랑장이라 부릅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로 시작합니다.
사람의 방언은 자기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천사의 말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방언입니다.
한국인으로 이곳에서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하늘의 언어를 말하면 대단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같고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소리나는 구리와 꽹과리는 이방신전에서 드릴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이방신전에서 그들이 믿는 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요란한 악기를 연주해도 우상은 관심을 보일리 없습니다.
생명없는 우상에게 바치는 악기 연주는 소리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처럼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에도 사랑이 없으면
이방신전에 드리는 악기소리와 같이 무의미한 소리라는 말입니다.
예언능력이 있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의미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람의 필요를 채우고 몸 불사를 만큼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준다면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아무도 나의 신앙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사랑이 없으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로마서 13장 8,9절에 의하면 사랑이 중요한 것은
사랑하면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어떤 이의 것을 도둑질하지 않게되고 탐내지 않으며,
사랑하면 그 사람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의 결론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습니다.
사랑의 중요성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가르친 바울을
우리는 사랑의 사도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본문 행전15;1-5절 말씀을 보면
사랑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여줍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다녀온 후
수리아 안디옥교회에서 전도 보고를 하며
은혜를 만끽하고 기쁨을 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에게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교회를 다녀도 구원없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일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2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적지 아니한’ 말은 길이기가 길다는 뜻과
양이 많다는 뜻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다툼’은 폭동, 반란의 의미를,
‘변론’은 논쟁, 언쟁을 의미합니다.
할례가 구원조건이라는 거짓 가르침을 가르키는 유대인과
가벼운 입씨름을 한 것이 아니라 화난 사람이 폭동을 일으키듯
그들과 논쟁했다는 말입니다.
2절 하반절에 사안이 위급한 것을 안 성도들이
바울과 바나바 및 몇 사람을 대표로 예루살렘 모교회에 보내
문제 판결을 받아오게 했습니다.
안디옥과 예루살렘은 480킬로거리입니다.
낮동안 하루쉬지 않고 가면 보름길입니다.
바울은 유대인 가르침 거짓임 알리기 위해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바울은 보름길을
그 마음속에 분노를 가득채운채 걸어갔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4;26-27절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분노할 수 있음을 인정하나 죄는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노로 하루종일 산다면 하루종일 한번도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았음을 뜻합니다.
바울은 유대인들과 격렬하게 맞섰고 그날 분노를 풀고
유대인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거짓임을 선언하기 위해
15일간 예루살렘길을 달려갔습니다.
그동안 분노를 가라앉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라 갈라디아 2;4, 1;9절에서는 같은 문제로
성도를 속이는 거짓 형제들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하고 사랑이 율법, 말씀을 완성한다고,
분노가 일어도 해가질때까지 품지 말라고 한 그 바울이
격렬하게 분노한 후 세월이 흐른 뒤 분노를
사그라트리기보다는 저주까지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울이 사랑의 사람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사랑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사랑했기에 한 사람이라도 영혼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을 던졌고,
사람을 사람을 사랑했기에 거짓된 가르침으로 무너뜨리려는 유대인에게
격렬히 맞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주셨기에
인간은 그 은총으로 계명을 따라 살 수 있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할례처럼 행위 자체를 구원조건으로 내세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이룬 것을 무효화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에 격렬하게 맞섰던것입니다.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모든 행위를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그릇된 관습과 전통에
과감히 맞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사랑의 구주입니다.
사랑의 주님이라고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수용한 것은 아닙니다.
유대교 지도자 면전에서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시들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장사꾼들이 터전삼으신 것 보시고 좌판을 엎으셨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백성을 무너뜨리려는 것으로부터
생명을 지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위해 늘 불의에 맞섰습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주님을 기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허물어 버리려는
거짓 선지자들을 막아서는 사람으로 사는 것 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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