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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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25장_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 느헤미야강
-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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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화) 새벽기도회
내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노라 <행전25장>
오늘 본문을 통해 제가 주목하게 된 말씀은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내용입니다.
대제사장들은 유대인 최고 지도자들입니다.
성전에서 한번씩 제사를 드려도 2년 동안이면 100번을,
최고 종교지도자들이니 한 주에 2번을 드린다면
2년 동안 200회 이상을 드렸을 것입니다.
2년 기간에 드린 많은 제사가 놀랍게도
그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안겨주지 못했습니다.
복음의 사람, 의로운 바울을 불의하게 대했고,
재판과 감옥을 계속 오가게 했습니다.
그들 자신을 살려야 할 제사가 무의미하게 될 때
최고지도자들은 조폭보다도 못한 인간들이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예배가 무의미하고 습관적인 종교행위로
전락한 예배는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살아있는 예배는 자기를 살리나,
무의미한 습관적 종교행위는 자신과 타인에게 백해무익함이 됩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무리들은 예루살렘에서 부임 시찰을 하는
신임총독 베스도를 만나자마자 바울을 고소부터 합니다.
바울을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 재판을 해주기를 요청했습니다.
총독법정에서 사형판결은 불가능함을 안 그들은 옮기는 중에
암살범들을 통해 바울을 죽이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베스도는 마치 그들의 의도를 알기라도 한 듯 거절하고,
자신이 며칠내로 본청이 있는 가이사랴로 복귀할 것이니
함께 가서 총독 법정에서 고발하라고 했습니다.
6절은 그 이후의 상황을 말해줍니다.
예루살렘 현지 시찰을 끝내고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스도는
그 이튿날 바울을 호출합니다(6절).
7절, 총독 호출을 받은 바울이 법정에 출두했고
대제사장들은 바울 주위에 서서 여러 가지 사건을 직접 고발했으나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바울에게 진술 기회가 주어지자 8절에,
자신은 율법, 성전, 하나님께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바울의 진술을 들은 총독은 예루살렘에 가서
산헤드린 재판을 받겠느냐고 묻습니다(9절).
그러자 로마시민이었던 바울은 총독 법정에서
로마 황제에게 상소를 합니다.
12절에 베스도 총독은 법률재판관, 자문단이 배석했기에
그들과 상의후 상소를 받아들였습니다.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는 것은 로마 시민의 권리이나,
누구보다 바울에게는 큰 사건이었습니다.
로마황제에게 상소했다는 것은
로마로 가는 길이 확정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전도지가 로마인 것을 알았습니다.
문제는 그곳에 어떻게 갈 것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 세부안이 상소를 통해 확정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황제에게 상소했다는 것은 로마 군인들의 보호속에
안전하게 황제에게까지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마 사람은 재판을 위해 황제에게 재판받고 죄가 드러나기전까지는
누구도 해하지 못하도록 로마 군인의 보호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2,240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암살에 시달리던 바울에게 먼거리를
로마 군인 보호로 이동하는 것보다 더 안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
예루살렘의 천부장에 의해 가이사랴로 옮긴 바울은
벨릭스 총독에게 심문받습니다.
무죄를 확인했으나 뇌물을 받을 요량으로 계속 구금하여
여러차례 만났지만 뇌물이 없자 2년동안 구금상태에서 방치했습니다.
자신이 로마로 돌아가기 전에 신임총독에게 이임하기 전에
바울이 구금상태인 것 알았으나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결박하여 감옥에 넣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무리들은 신임총독에게 또 고발했습니다.
바울에게는 2년 동안의 구금이 억울함과 고통이었고
절망의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신임총독이 부임하자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또 고발하니 기가막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서 2년 기간을 거치며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던 로마황제에게 상소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가 복음전도의 종착역인 로마까지 가려면
수많은 위험이 있을 것이고 가야 할 방법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가장 안전하게 이동하는 것은
로마군인의 보호를 통한 것 외 다른 길은 없었고
그것은 오직 로마황제에게 상소할때만 가능할 일이었습니다.
그 마음이 생기고, 그 시기가 무르익기까지
무려 2년이 소요된 것입니다.
바울이 고통스러운 2년 기간을 어떻게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황제 상소를 통해 바울을 로마군을 보호속에 이끌어가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십시오.
엡5;1절,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이것은 그 자신이 감옥에서 하나님 본받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빌4;4-6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
로마 감옥속에서도 기도하는 심령, 감사와 가쁨으로 넘쳐났습니다.
골3;1-3절,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로마 감옥에서도 그 무게에 짓눌려 절망에 빠진적 없었습니다.
감옥에서도 고개들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뵙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참 생명은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옥속에서도 위에 계신 하나님께
자기 심령의 초점을 맞추고 살았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삶 전체가 예배였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는 감사, 기쁨이 충만,
하나님 복 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2년동안 가이사랴 감옥에서도,
로마 감옥에도 같은 삶 살았을 것입니다.
확실한 것은, 벨릭스에 의해 2년동안 구금되었을때도
하나님께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감옥에서도 하나님 생명으로 충만했고,
하나님의 지혜로 로마 황제 상소를 통해
로마 군인들의 보호속에 이끌림받는 것이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2년동안 한탄과 절망에만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방송을 보면 카메라와 모니터가 있습니다.
모니터는 카메라가 비추는 것만 나타납니다.
앵커를 비추면 뉴스가 나오고,
경기장을 비추면 선수들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똑같습니다.
우리의 눈과 심령이 세상에 초점 맞추어 있다면
몸이 예배당에 있어도 세상 것이 드러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위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 심령에 초점을 맞추면
감옥에서 있어도 우리 삶에는 하나님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의 초점이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는 한
우리 삶, 진흙같은 어둠이어도 그 삶속에 예배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 삶에 크신 손으로 지배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초점을 둘때만 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우리의 삶도 하나님께 맞추어져 있는 한
우리가 아무리 보잘 것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 삶에 반드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년 동안 구금 당한 바울같아도 그의 로마를 향한 소원이,
가장 안전한 로마군 보호로 이끄시듯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은혜와 능력, 지혜는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초점을 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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