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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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토새_ 제자요 칭찬받는 자_행전16;1-3
- 느헤미야강
- 201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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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3(토) 자녀위한 특별새벽기도회
디모데라는 제자 <행전16;1-3>
1절은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로 시작됩니다.
디모데라 하는 제자!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은 태어나면 유대교인으로 살게 됩니다.
본문이 믿는 유대 여자라고 한 것은,
유대교에서 개종해서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뜻합니다.
유대인 여자가 헬라인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디모데는 혼혈인입니다.
3절은 바울이 루스드라를 떠날 때 디모데를 대동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바울 생애에서 동역자로 살았고, 바울의 모든 서신에 등장합니다.
디모데전,후서는 디모데 개인을 위한 말씀입니다.
바울은 자기 서신속에서 디모데를 내 아들이라 했습니다.
바울에게 여러명의 동역자가 있었으나 아들 칭호는 디모데가 유일합니다.
디모데는 당시 18세로 추정합니다. 청소년입니다.
본문은 그 어린 디모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1절에,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디모데를 ‘제자’로 소개합니다.
‘예수제자’라는 말입니다.
‘있으니’는 에이미 동사라 하여 Be 동사입니다.
미완료로 쓰여져서 반복되는 동작을 나타냅니다.
즉, 디모데는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해서 예수의 제자로 살아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절은 ‘칭찬 받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이고니온은 3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인데
그곳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였습니다.
‘칭찬받는자’ 역시 미완료입니다.
역시 계속 칭찬받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계속 제자로 살았고, 계속 칭찬을 받았습니다.
언제부터 제자로 살았고 칭찬받는 자 되었을까요?
디모데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시에 복음을 영접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루스드라 사람들과 유대인에 돌세례를 맞아
죽음직전에서 성밖으로 끌려갔습니다.
예수 믿으면 어찌되는지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디모데는 주님의 제자로 계속 살아온 것입니다.
예수만이 살게하는 능력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만이 루스드라에서 소망을 주시는 분임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처음부터 소개할 때 예수 제자라고 소개합니다.
이곳은 큰 성읍이 아닙니다.
터키 대륙 중부지방으로 로마가 다스리는 성읍 중
가장 작은 성읍입니다.
당시 성읍은 돌로 건축했는데
루스드라 현지를 보면 흔적도 찾기 어렵다고 합니다.
당시 로마제국내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작은 마을
루스드라와 거기에 살고 있는 18세된 디모데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루스드라에 18세 디모데가
제자로 살고 있다고 분명히 증언합니다.
어떻게 성경에 그렇게 기록되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보시고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로마의 다수의 사람들은 루스드라 마을과 디모데를 몰랐으나,
하나님은 디모데를 분명히 보고 알고 계셨던것입니다.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어머니가 예레미야를 임신하기 전에 하나님이 알았고,
출산전에 당신의 자녀로 구별하셨으며, 선지자로 세웠습니다.
우리 역시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에 따라 지어진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세상 사람은 몰라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고,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세상사람 누구나 보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2,000년 전 로마제국은 세계 최고의 제국입니다.
그 제국내에는 당시의 스티브 잡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시대만의 스마트폰도 있었을 것입니다.
유명 배우도 있었고, 사람을 사로잡은 개그맨도, 명품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인사, 재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위에 로마황제도 있었습니다.
그들에 비해 루스드라의 18세 디모데는 무명의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디모데를 지으셨기에 보고 계셨습니다.
그가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하여 제자됨을 살고 있음을 보셨습니다.
계속해서 이웃사람들에게 칭찬받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본문을 통해 디모데라 하는 제자를 부르시고
때가 되어 위대한 바울의 동역자 되게 하셨습니다.
용기, 힘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세상 사람이 아무도 나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 사람이 보잘것없이 여겨도,
주님의 부르심따라 사는 나를 알고 계시고,
내 삶을 보고 계신다는 것보다
더 큰 위로와 격려, 소망은 없습니다.
젊은 바울이 고향에 13년을 칩거할 수 있었을때도 하나님이 보셨기에
무의미한 것 같은 13년 칩거중에도 하나님의 절대적 뜻이 그를 통해 이루셨습니다. 바울이 사명이 뚜렷해서 다시 루스드라를 찾아간 것은, 하나님이 보고 알고 계시기에 모든 결과 또한 책임져 주실 것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은 로마제국 전면에 등장하는 유명인사를 다루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들에 비해 무명한 사람 바울을 보여주십니다.
또한 지역으로도 나이로도, 이름으로도 무명인 디모데가 제자로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때가 되어 바울의 동역자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주님 부르심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마음, 우리들의 처지를 보시고, 역시 때가되면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 뜻 이루실 것임을 사도행전을 통해 깨닫게 해주십니다.
2,000년 전 로마제국 유명인사들에 비해 베들레헴에 태어나시고,
나사렛에 사시며 사역하신 예수님도 무명의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로마황제, 재벌은 모르나
로마제국 변방 지역의 예수의 삶과 수난, 부활을 알고 있고.
예수님을 알고 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삶과 수난, 부활과 승천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시기 때문에 우리 역시 예수 믿는다는 것 자체가 소망이요 위로가 됩니다. 우리도 그리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예수 보내시고 삶과 고난과 죽음을 지켜보시고 죽음에서 일으켜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알고 보고 계심을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내 곁에서 내 삶 보시고 계심을 믿지 못했던 삶 회개해야 합니다.
내 자녀의 삶 보고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앞의 산맥, 자녀들 앞에 높여진 장애는 은혜의 관문입니다.
하나님이 보고 아시기에 18세인 디모데,
보잘 것 없는 존재라도 제자로 사니,
30킬로 미터떨어진 곳에서도 칭찬받는 삶을 사니
때가 되어 순종하는 바울을 보내시고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동역자로 쓰임 받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알고, 보시기에 부름따라 소명의 삶 살 때
죽음 골짜기에서도 절대적 의미를 갖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죽는다해도 살리십니다.
그래서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자신을 사랑하는 길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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