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요한16장; 기억나게 하려 함이라
- 느헤미야강
- 2019-01-05
- 696 회
- 0 건
요한복음 15장 18절에서 27절을 통해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칭찬과 존경보다 미움을,
모함과 핍박을 당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절을 보면 제자들을 증오하고 핍박하는 자들은
다 하나님을 아는 자들이었고,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함이라고 말할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짓 밝으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한것이라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망각하면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3절,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예수님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때문이라 단언하십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망각하며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고서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하나님을 위해 살아간다고 착각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기억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속에 거하는 것을 뜻합니다.
4절,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3년 동안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필요한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제 얼마안 있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야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제자들이 사람들로부터 핍박당할 것이나
말씀을 기억하는 사람들과 말씀을 의지하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속에 거하며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정말 필요할때에는 말씀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는 내 분노가 폭발하려 할때입니다.
내 감정이 끓어오를 때입니다.
내 욕망이 나를 온통 사로잡으려 할 때입니다.
그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지 않게 오히려 불신자들보다
더 분노를 터뜨리고, 더 감정을 폭발시키며,
더 욕망으로 이성과 양심을 짓밟고 난 뒤에야 겨우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하나님과의 관계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삶은
전혀 변화되지 않고 반복되는 것은 씁쓸한 후회뿐이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대부분의 삶의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말씀을 기억해야 할 때 기억하고,
언제 어디서든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5장 결론이자 요한복음 16장 서론인
요한복음 15장 26절이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성령님과 함께 할때에만, 성령의 조명아래에서만
인간의 극한 상황속에서 늘 말씀을 기억하는
말씀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성령님은 말씀을 기억나게 도와주시는 영입니다.
성령임을 떠나서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과 함께 하는 자가 되도록
성령의 조명아래 있도록 그분의 도우심속에서
말씀을 기억하도록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기도없이는
절대로 성령님과 함께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성령임을 내 속에 모시는 정중한 초청장이요,
성령의 조명안에 들어가는 입장권입니다.
기도없이 참된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리스도인의 호흡이고 동시에 의무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안됩니다.
내가 성령님과 함께 할때에 성령님께서 언제나
내가 필요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성령님께서 기억나게 해 주실 말씀을 듣고 보고
마음속에 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본 것 없고 들을 것 없고
마음속에 담아둔 것이 없는데
성령님께서 기억나게 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담고 있는 사람을 성령님께서
더 많이 도우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로 하여금 필요할때마다 필요한 말씀을 기억하도록
도우시는 것이 성령님의 책임이라면
성령님께서 나를 도우실 수 있도록
말씀을 보고 듣고 담은 것을 우리 자신들의 몫입니다.
여러분은 매일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루에 몇 구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담고 있습니까?
이것을 도외시한채 주일이면 예배참석하는 것만으로,
하루에 세끼 식사를 하면서 기도하는 것만으로 그친다면
불행히도 참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새벽예배, 개인 경건의 시간, 말씀통독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마음에 담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않는 사람들속에 성령님께서 거하실 수 없습니다.
설령 성령님께서 함께 하실지라도 역사하실 수가 없을뿐만 아니라,
그 사람속에 말씀이 없는고로
그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우실 수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교회 안팎에서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중적인 삶이 언제 종식될 수 있으며,
반복되는 씁쓸함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20절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애.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 마음속에 꼭 넣고 계시 터이니,
우리 역시 주님을 마음 속에
꼭꼭 넣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꼭꼭 넣으십시오.
말씀을 보고 듣고 마음에 차곡 차곡 담으십시오.
성령님의 도우심속에서 매일 매일
필요할때마다 꺼내어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새로워질 것이고
우리 삶의 의미와 가치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 이전글 요한17장_하나되게 하소서 19.01.08
- 다음글 요한15장_주님 안에 거하라 19.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