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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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19장_나의 왕은 누구인가?
- 이형원전도사
-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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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심문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 그리고 그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까지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오늘의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심문을 과정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심문의 가장 큰 이슈 혹은 단어를 찾아보라면 ‘왕’ 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시종일관 로마의 군인과 빌라도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하지만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십자가형을 할 만한 죄를 발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조롱하고 그를 해하도록 나두고 그 후에 매 맞고 조롱당한 예수님을 유대의 군중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을 진정시키려 했습니다.그러나 유대의 군중들은 도무지 그 소요를 잠잠하게 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자칫 민란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그래서 빌라도에게는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히게 될지도 모르는 위기가 다가왔습니다. 군중들은 이러한 빌라도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기에 심지어 스스로를 왕으로 이야기 하는 자에게 죄를 묻지 않는 것은 가이사에 대한 충성심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그를 충동하였습니다.
특별히 제사장들의 고백은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15절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정말 놀라운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제사장이라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왕이 가이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왕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신앙의 한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심문의 과정을 보면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 가이샤가 이 사건의 영향을 가잔 크게 미친자로 등장합니다. 즉, 이 세상의 왕이라고 하는자가 얼마나 큰 영향력으로 빌라도와 유대의 군중들에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보게됩니다. 빌라도는 가이사에게 혹시 잘 못 보일까봐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풀어주기를 주저하며 결국은 유대군중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님을 내어주게 됩니다.군중들은 가이사의 이름으로 빌라도를 협벽하고 자신들의 왕은 가이사 밖에 없다며 그들의 충성심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결국 그들 모두는 세상의 권력, 세상의 것을 의지하여 참 왕이신 예수님에 대하여는 무지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의 것에 속한 사람이 아닌 줄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때로는 이 빌라도 처럼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군중들 처럼 세상의 권력을 의지하고 세상의 원하는 기준을 나의 삶의 기준을 삼기로 원하는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저는 특별히 어제 말씀을 묵상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빌라도의 질문이 너무나도 저에게 크게 다가옴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로 9절에 나오는 빌라도의 질문인데 ‘너는 어디로부터냐?’라고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은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하는 질문입니다. 즉, 유대인들이 고발하는 죄목인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혹시 정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혹은 그렇게까지는 믿지 않더라도 요한 복음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마태복음에 기록된 대로 그 부인이 전날 꾼 꿈에 대한 이야기까지 생각이 나면서 불길함은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빌라도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게 되었더라면 그리고 그 사실을 믿게 되었더라면 제판의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부분이 크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이러한 질문이 우리 마음속에도 여전히 있지 않은가를 생각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예수님! 정말 예수님 살아계신 분 맞나요? 라고 묻고 있지는 않은지, 역사 속의 한 인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정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또한 하나님께로부터 온자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며 하나님의 아들로 여긴다면 많은 부분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과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지 모르겠어, 혹은 난 의심스럽다고 이야기 하지는 않을지라도 삶의 모습을 통해 여전히 그 분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게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왕으로써 생각하며 그 분으로 인하여 모든 생각과 행동과 삶의 모습이 달라져 있습니까? 아니면 가이사를 왕으로 생각하고 그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영향을 받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써 또 왕으로써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여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이처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을 통해 이 세상의 진짜 왕이 누구인지를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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