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행전2장_새 술과 제 삼시
- 느헤미야강
- 2019-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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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순절날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을 때,
제자들은 성령님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각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세계 도처에서 온 사람들이 각각
자신들의 모국어로 알아들을 수 있는 이해 가능한 언어였습니다.
이들이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기에 이방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이 술에 취했다고 비웃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임을 역설하며 요엘 2장을 인용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의 비웃음에 지체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응했습니다.
그의 주된 관심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갈릴리의 어부에 지나지 않았던 베드로를
존경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만 관심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심령은 무엇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만사를 평가하고 표현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단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에서 세상을 분별하고 있습니까?
2.
본문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제자들을 조롱한 것과 관련해서
두 가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들이 언급한 술의 실체입니다.
13절,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그들은 제자들이 단순히 취했다고 조롱한 것이 아니라
‘새 술’에 취하였다고 비웃었습니다.
일반적을 도를 넘어 사람이 술에 취하게 되면
의식이 흐려지고,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이 불가능해집니다.
말에는 조리가 없어지고, 횡성수설합니다.
그 다음에 자세가 흐트러집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걸음걸이도 비틀거입니다.
허세와 만용까지 부립니다. 예의마져 상실해 버립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실종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합니다.
이것이 술취한 자의 기본적인 행태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을 조롱하던 자들이 술취했다고는 못하고
새 술에 취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변방, 갈릴리 빈민출신이기에 대도시에서 주눅들고
어눌해 보일 수 밖에 없는 제자들이 예상과는 달리 쉬지 않고
담대하게 말하는 모습이 꼭 술취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술 취한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말을 많이 하였지만 누구도 횡설수설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의 말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조리와 감동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도 제자들의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제자들을 ‘새 술’에 취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제자들을 비웃는 사람들조차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제자들의 긍정적인 변화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입니다.
본문 구절에서 받는 도전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령충만함은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를 잘 알고
우리를 좋아하는 같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만 확인되는게 아닙니다.
예배당 밖 세상에서 주님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인을 조롱하는 자들마저
우리의 새로운 변화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우리는 진정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두 번째로 주목할 것은 제자들의 성령 충만한 시간입니다(14,15절)
“--때가 제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는 일반적의미로 술에 취하지 않았음을 밝히기 위해
그 시간을 제3시임을 강조하였습니다.
요즘으로 오전9시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아침 9시, 낮12시, 오후3시
이렇게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시간인 아침 9시에 술을 마셨을리 없다는 의미로
베드로는 시간을 강조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오순절과 같은 절기에는
아침 10시까지 금식하는 관습이 있으므로,
금식기간중인 아침 9시에 술 취했을리는 더더욱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서 감동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제자들의 성령충만함을 자타가 인정한 시간이
아침 9시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아침 9시의 특징은 보통 하루 일과가 시작되는,
현실적으로 가장 세속적인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배당에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당이라는 장소의 특성상, 예배 시간이라는 특성상,
이 순간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성령님에 대히 민감할 수 있고
주님께 우리 마음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 9시, 내일 아침 9시,
여러분은 각자의 일터에서 성령충만한 마음으로 앉아 있겠습니까?
아니면 철저히 세속적인 마음이겠습니까?
오늘 아침 9시에 진리에 사로잡혀 하루를 시작하겠습니까?
세상 논리의 포로가 되어 일과에 임하겠습니까?
오늘 아침 9시, 현실적으로 가장 세속적이기 쉬운 그 시간에
여러분의 비판마저 여러분을 향기롭고 감미로운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보겠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동료조차 여러분을
누구보다 속된 인간으로 간주하겠습니까?
우리의 성령충만함은 주일에, 예배당에서,
예배 시간에 가려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성령 충만함은 주일이 다 지난 뒤,
월요일인 아침 9시가 되어서야 판명됩니다.
이 새벽예배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 아침 9시가 될 때 판가름납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9시 가장 세속적이기 쉬운 그 시간,
자신에게 임하여 계시는 성령님을 의식하며
진리의 빛 속에서 새로운 하루를 맞는 사람이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아침 9시, 세상 한 가운데에서도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이
진정 성령충만한 사람이요, 그런 사람에 의해 세상은 새로워집니다.
매일 아침 9시에도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진리의 등대요,
진리의 열매를 위해 스스로 썩어지는 진리의 밀알이요,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님의 또 다른 언어들,
주님의 혀로 승화될 것입니다.
아침 9시에 제자들을 사로잡아 주신 성령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잊지 마십시오.
주저 말고 성령님께 사로잡히십시오.
성령님께 취하십시오.
성령님의 지배속에 거하십시오.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진리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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