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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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9장_복음에 의해, 복음을 위하여
- 이형원전도사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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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에는 바울이 회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원래 1절에서의 말씀처럼 예수님에 제자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 자였습니다. 그런 자가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믿는 자를 결박해 올 수 있도록 공문을 받아서 가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그 음성을 통해 그는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죠.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사건은 그의 인생을 통째로 바꾸는 결과를 가지고 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의 이름을 듣고 그 자리에서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그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눈을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앞을 못 보는 바울은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다메섹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사지도 아니하니라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9절의 말씀을 천천히 묵상해 보니 그가 앞을 못보는 거은 보지 못한다고 기록하고 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 것에 대해서는 못먹고 못 마신 것이 아니라 않목고, 않마셨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눈을 못 보게 된 것으로 인하여 상심해서 그랬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12절의 말씀을 보면 아나니아에게 바울의 눈을 다시 볼 수 있도록 가서 안수하도록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미 바울은 그 장면을 보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이제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가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것은 단순히 눈을 볼 수 없어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아마도 그가 식음을 전폐한 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배워왔던 모든 것, 자신이 알고 지켜왔던 그 모든 것과의 싸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그토록 살기 등등했던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그는 이제까지 자신의 가지고 있던 신앙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그리고 식음을 전폐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했던 바울은 드디어 그 후 아나니아를 통해 눈을 뜨게 되고 음식을 먹고 건강해 져서 이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파하는 자로 변화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얼마나 큰 확신이 있었을까요? 유대인들은 그렇게 변화된 바울을 죽이려고 까지 했을 만큼 그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났다고 믿습니다. 그 분의 음성을 들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남들은 다 잠들었을 이 시간에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기도하는 줄 믿습니다.이러한 만남이 있던 우리도 과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나를 알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 내가 달라졌음을 느끼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 자신을 또 우리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길 바랍니다.
복음은 누군가가 전해준 것을 듣는 것만으로는 완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확신에 거하게 될 때 그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많은 위대한 믿음의 위인들이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틴루터도 복음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와 고민을 했는지 그의 인생의 전기를 읽어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존 웨슬리 또한 목회자이고 목숨 걸고 선교자의 삶으로 나아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 마음에 확신이 없음으로 인하여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모습을 보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순간이 필요함을 보게 됩니다. 그저 누군가가 전해준 복음, 깊은 고민과 자기 성찰이 없는 복음은 결국 언제가 넘어지기가 쉽고 또 흔들리기가 쉽습니다.하지만 치열한 고민과 갈등과 씨름을 통해 얻어진 복음은 우리에게 확실한 신념을 심어주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더하여 주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고민, 복음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기위한 몸부림이 우리의 삶가운데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결국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서 회심한 것을 기록해 놓은 위치를 보면 이제 이방에 복음이 전해짐을 기록하기 위한 사전 소개임을 보게 됩니다.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가 이방의 사도로써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32절 이하의 말씀에 나타나는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낫게 하는 사건, 그리고 도르가라 하는 여인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그 모든 사건은 결국 복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35절의 말씀은 중풍병자가 나음으로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왔다고 기록합니다. 42절에는 도르가가 살아난 사실을 욥바사람들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덜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복음이 전해졌다는 것에 모든 기록의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먼저, 우리의 삶 가운데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한 확신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 치열한 고민과 자기 성찰, 말씀에 대한 깊이 있는 묵상을 통해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에 대한 확신은 단순히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의미가 있음을 믿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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