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행전 11장_주의 손이
- 느헤미야강
-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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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는 이방 세계에 세워진 최초의 이방인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위대한 사도바울을 배출했고, 이방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한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출현은 2천년 교회사에 한 획을 긋은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고,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사도들에 의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것은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 이름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몇 사람이었습니다.
이름과 나이, 직업이 젼혀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누가복음서도 기록한 의사인 누가였습니다.
그는 의사이기에 매사에 치밀하고 분석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시기적으로도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동시대의 사람들입니다.
후에 바울의 수행자가 되었기에 누구보다 바울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같이 안디옥 교회에서 1년간 함께 목회를 했습니다.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 파송을 받아 선교에 나섰습니다.
그런 바울이 자신이 목회하던 안디옥 교회를 세운 ‘몇 사람’이 누구인지 몰랐을까요?
바울이 몇 사람을 알았더라면 누가 역시 그들의 이름을 몰랐을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그들이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이라고만 밝혔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사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하고도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사람에 의해 세워진 안디옥 교회로 인해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디옥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몇 사람은 유대인들이 전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유대인인 나사렛 예수가 온 인류를 구원하는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에서 유대인은 변방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변방인에 불과한 유대인 나사렛 예수가 가난한 목수 생활이 전부인 유대인이
인류의 구세주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그 말을 들은 헬라인들, 세상 누구보다도 자기 민족의 문화에 역사에 대해
긍지를 지닌 그리스인들이 그 유대인을 주님으로 영접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겠습니까?
21절입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그 해답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안디옥의 이방인인 헬라인에게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들의 이름을 가렸던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 천지를 창조하신 손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손으로 인해 안디옥의 이방인 가운데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겸손하게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기만 하면,
그의 삶을 통해 반드시 하나님의 감동적인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나이 80이 되기까지 미디안 광야의 양치기였던 모세에게 유일한 개인 재산이 있다면 양치기용 마른 지팡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라하고 가진 것 없는 모세에게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킬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나이 들어 마른 지팡이 하나가 전부일 수 있는 모세에게 단 한 명의 군사나 무기도 주시지 않고
애굽의 바로와 맞서 이스라엘을 바로에게서 해방시키도록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나 모세는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
그 순간부터 모세의 지팡이에 대한 명칭이 달라졌습니다.
출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비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조금전까지는 모세의 지팡이었으나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출발하는 순간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리지 그 지팡이는 더 이상 마른 막대기가 아니었습니다.
그 지팡이를 앞으로 내 밀었을 때 홍해가 갈라졌고, 반석을 치자 생수가 강물처럼 터졌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그 막대기를 잡고 있는 모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의 나이 어린 양치기였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할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으로 다윗을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사신 까닭에 나사렛 빈민 목수셨지만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셨고 하나님의 손으로 다시 살리시고
영원한 부활의 구주로 세우심으로 누구든지 예수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손에 영원히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본문 속의 몇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안디옥에서 이방인에게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고,
미디안 광야의 마른 막대기 같은 모세가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출애굽 역사를 이루고,
베들레헴의 나이 어린 양치기 다윗이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이스라엘의 별로 기려지고,
예수님 역시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영원한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 편에서는 기적이나 하나님께는 당연한 일입니다.
정말 기적은 보잘 것 없는 우리를 붙들어 주시기 위해 당신의 손을 우리에게 내밀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우리 자신의 몫입니다.
우리의 손을 내밀어 하나님의 손을 잡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속에서 하나님의 손에 우리의 삶을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를 세운 몇 사람처럼, 모세처럼,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출세하고 얼마나 많이 소유하느냐가 아닙니다.
누구의 손에 사로잡혀 사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출세하고 많은 것을 소유해도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혀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 없어질 자기 손만을 의지하려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런 인생은 하찮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곧 있다가 없어진 자신의 손을 의지하느라
천하보다 귀한 자기 생명을 허비하여 왔다면 회개하고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혹 본문 속 안디옥 교회를 세운 몇 사람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존재이십니까?
80노인 모세와 같습니까?
베들레헴의 다윗처럼 작고 미약한 존재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처럼 지금 고통스럽습니까?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손을 우리에게 내밀고 계시니다.
그 손을 잡으십시오. 그러면 그때부터 역사가 일어납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지니고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사로잡혀 사느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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