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요한6장_나는 생명의 떡이라

  • 느헤미야강
  • 2018-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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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15() 새벽기도회

 

에고에이미 1; 나는 생명의 떡이라 <6>

 

요한복음에는 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자기선언이 7번 나옵니다.

각각의 자기 선언에 앞서 표적을 보이시고

그것의 의미를 설명해주시면서 표적의 참 의미를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에고 에이미' 선언은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입니다.

이 선언은 일곱 개의 표적들 중 오병이어 사건과 연결됩니다.

유월절 가까웠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 호수 건너편에 있는 산에 오르십니다.

많은 무리가 그분에게 모여 들었고

예수님은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부스러기가 열두 광주리에 가득했습니다.

그 이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광야에서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14)

즉 메시아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그 믿음은 삽시간에 군중 사이에 퍼져 나갔고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 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그 분위기를 감지하신 예수님은 산 속으로 몸을 피하십니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메시아로서 예수님이 하실 일과

무리가 메시아에게 바라는 일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다음 날, 바다 건너까지 배를 나누어 타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갔고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31).

우리에게도 항상 먹을 것을 주십시오 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떡은 모세가 너희에게 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다.

이제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참 떡을 주신다.

그 떡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다.

내가 바로 그 생명의 떡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이 땅에서 우리가 먹고 사는 육의 양식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셔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농부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어부가 물고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힘으로 수고해서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손을 통하여 먹을 것이 우리 입에 오는 것이지만,

그것들의 근본 출처는 바로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양식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서 들어야 합니다.

이 양식은 참 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먹었던 그 만나는,

너희들이 먹은 그 떡과 물고기는 참 양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먹어도 곧 죽는다는 것입니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49)

먹어도 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떡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58)

잠시 살다가 결국 죽게되는 그런 떡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는 떡이 있다는 것입니다.


먹고 나면 또 먹어야 하고, 먹어도 다시 배고프고

목마르게 하는 그런 양식이 아니라,

한 번 먹으면 영원히 주리고 목마르지 않는

그런 떡을 먹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살게하는 생명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5)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51)


그러니 우리가 정말로 해결해야 한 것은

오늘 먹고 오늘 하루 살아가는 떡을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떡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48)

육의 양식만을 위해서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잠시 뿐인 것을 위해, 결국 먹고 죽는 것을 위해,

온 인생을 허비하는 것만큼 억울하고 허무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참 떡을 먹는 것입니까?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6)

한마디로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찢기신 그 몸과 흘리신 그 피가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 거하고 주님이 내 안에 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내 십자가가 되고,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 되고,

그래서 결국 주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고

참 떡을 먹는 것입니다.

주님과의 동행은 이 참 떡을 먹은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거하시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영광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영광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가지 더 생각해야 합니다.


믿는 것은 예수님을 먹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

우리의 육신에 음식과 음료가 필요하듯

우리의 영혼에도 음식과 음료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음료가 우리의 육신을 형성하듯,

우리가 먹고 마시는 영적 음식이 곧 우리 자신이 됩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영적 활동은 예수를 먹는 과정입니다.

예배도 그렇고, 말씀 묵상도 그렇고, 찬양도 기도도 그렇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먹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내 안에서 움직이십니다.

내 생각과 지향과 뜻과 감정이 그분의 것이 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갈증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인생의 낙을 찾아 두리번 거리지 않습니다.

하루 하루 의미와 기쁨이 내면에 들어차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영생을 맛보며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