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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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8장_음행중에 잡힌 여인과 사람들
- 느헤미야강
- 2018-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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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은 음행중 잡힌 여인 여인의 이야기와
에고 에이미, 예수님의 자기 선언 두 번째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12절)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2절)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을 만났다는 말씀 등으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갈등이 묘사되고 있습니다(56-59).
오늘 본문중에 요8;1-11절을 주목해보고자 합니다.
신명기 22장 22-24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자가 유부녀와 통간함을 보거든 그 통간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성읍문으로 끌어내고
그들을 돌로 쳐 죽일 것이니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지르지 아니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들은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라며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모든 사람들이
이 말에 동조하여 돌을 들고 이 여인을 죽이려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니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모두 도망갔습니다.
언뜻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간음 현장에서 잡힌 자는 율법에 의해 돌로 쳐
죽임을 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간음한 여자만 잡아왔습니다.
신명기를 잘 읽어보면 이 법은 남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은 남자는 놓아주고 여자만 잡아 왔습니다.
그들이 율법 적용의 대상을 선택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율법은 돌로 칠 장소를 성읍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성읍중에 있어도 성읍문으로 끌어 내어 돌로 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피로 성읍을 더럽히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성읍문이 아닌 성전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성전이 더렵혀지는 것도 안 중에 없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러한 중요한 요소들을 숨긴채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앞에 불쑥 내 놓고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물었습니다.(요 8:7)
이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성화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너무 쉽게 동화 되었습니다.
성경은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생긴 이벤트에 옳고 그름의 판단 조차 하지 않고
그냥 쉽게 동화되어 버린 것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권력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조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저들의 말이라면 다 옳은 줄 알고 무작정 따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하니까 그냥 따라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고,
재미있어 보이니까 돌을 들은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야 어찌 됐건 예수님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는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아 모두 도망가 버렸습니다.
2절 예수님을 보고 말씀을 듣기 위해 모였던
말씀에 대한 갈망과 열심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율법을 바로 알고 서기관과 바리세인들의 말과 행동이
옳지 않았음을 안 사람이 있었다면
그래서 무리에 동조하지 않고 돌을 들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도망갈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한가로운 가운데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을 묵상하는 중에 세 종류의 사람을 봅니다.
예수님, 서기관과 바리새인, 그리고 음행중에 잡힌 여인입니다.
세 사람다 말씀이라는 율법앞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생명을 품고 용서하려 하고 있고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율법의 진실을 외면한채
자기들의 욕망에 따라 여인과 예수님을 죽이려 합니다.
여인은 말씀앞에서 죄인으로 서 있습니다.
첫 번째 깨닫는 것은 나 역시 편협된 말씀으로
누군가를 죽일수도 있겠구나입니다.
두 번째로는 음행중에 잡힌 여인의 모습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존재이나 품으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앞에
여인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 이후의 삶은 어땠을까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여인은 바로 우리 자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을 읽어가는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기대가 무엇일까요?
말씀을 자신에게 비추어 살피는 대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도 여인처럼 품고 용서했으니
다시는 그와 같은 삶을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예수님은 다가오십니다.
우리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품으십니다.
그리고 다시는 그 죄에 거하지 말것을 명하시며
진리의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이십니다.
그 여인은 아마도 앞으로
그와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용서가 있었는데,
어찌 더 이상 범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진리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용서해 주신 죄들을 더 이상 품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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