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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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0장_오직 예수
- 이형원전도사
- 2018-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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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은 10장의 말씀은 어제의 논란에 이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양의 우리의 비유와 수장절에 성전에서 유대인들과 벌이는 논쟁이 주요 내용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9장에서 맹인을 고친 표적을 보고서도 그 일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맹인의 이야기를 믿으려 하지 않는 그래서 그 맹인을 내어 쫓아버린 바리새인들을 비판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맹인으로써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뿐 만아니라 오늘의 비유를 통하여 그들은 절도며 강도라고 표현되어 지고 있습니다.
양의 우리에 들어간 양들은 그 우리 안에서 밤을 안전하게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우리의 문은 문지기가 지키고 있다가 날이 밝았을 때 양의 목자가 왔을 때 그를 위하여 문을 열어주고 또한 양들도 자기를 지키는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양들을 부르고 그 목자가 앞장서서 나가면 그 양들은 그 음성을 듣고 그 목자를 따라 길을 나서게 됩니다. 이처럼 문으로 출입하는 자는 양의 목자이지만 그 문이 아니라 다른데로 넘어가는 자는 다 강도고 절도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문이 되심으로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는 자들은 구원을 받고 그곳으로 출입함으로 꼴을 얻는 반면에 그 외의 것으로 오는 자는 도둑들 뿐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양으로 그 생명을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고 오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선한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분인가 하면 삯꾼은 참 목자가 아니라 이리가 오면 양을 버려두고 달아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삯꾼과 도둑은 모두 바리새인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혼과 생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맹인이 고쳐졌음에도 그들의 관심은 그저 그 일이 일어남으로 나타나게될 현상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릴 것이라는 말씀으로 그가 걷게 될 길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는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 나왔던 유명한 말씀인 3장 16절의 말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는 말씀과 완전히 같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은 둘로 나뉘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오셨다는 의미에는 예수님을 믿던지 아니면 배척하던지 둘 중 하나의 길로 나아가야함이 강요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믿지 않음으로 이미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양의 문이 되어 주시는 분임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묵상해 봅니다. 그 문을 통하여 출입하지 않는 모든 것은 도적에 불과함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더 다른 많은 문들을 우리에게 제시하려고 합니다. 세상의 즐거움이 그 문이 되어 줄 것 처럼 여기게 합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그 문을 대신 할 것 처럼 우리에게 유혹해 오기도합니다. 때로는 그 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여서 많은 문 중에 하나로만 들어가면 되는 것처럼 때로는 이 문도 들어갔다가 저문도 들어가는 것이 좋은 것처럼 우리에게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그 문으로만 들어가게 하지 못하는 그 모든 것은 도적이며 삯꾼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줄 믿습니다. 양의 문이 되시는 그 분의 문을 통하지 않고는 영생의 길로 나아갈 수 없음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요한 복음 14장 6절을 통하여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을 향하여 걷고 있습니까? 오직 한 분이신 예수님의 문을 향하여 걷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문은 어떤 문인지 이제 알았으니 다른 문도 한 번 가봐야 겠다고 여전히 다른 곳을 기웃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세상의 것에 기웃거리는 모습, 여전히 근심하고 걱정하는 모습, 여전히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몸부림 치는 모습, 내가 배불러도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을 보면서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며 자존감을 낮추는 모습들 우리에게 있는 세상이 강요하는 다른 문에 기웃거리는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이 때에 예수님 한 분 만이 양의 문이 되어주시는 참 목자임을 알고 그 문으로만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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