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눅11장_기도와 영성
- 느헤미야강
-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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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1장 본문속에서 오늘은 1~13절까지 말씀을 나눕니다.
앞에서 열두 사도를 택하실때처럼 누가는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장면을 거듭 부각시킵니다.
기도는 예수님의 매일 일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기도에 전념하고 있을 때,
세례 요한이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 준 것처럼
자신들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제자들이 청합니다(1절).
기도는 한 사람의 신앙(신학)의 요약이고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비추어 주는 거울입니다.
한 사람의 기도의 삶과 내용을 보면 그의 신앙과
내면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님은 모범 기도문을 만들어 주십니다(2-4절).
이것을 우리는 ‘주기도’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하신 기도가 아니라 가르쳐주신 기도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서 주목할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기도가 먼저 나옵니다(2절).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둘째는 우리 자신에 대한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필요를 구하고 있습니다(3절).
정화되지 않은 욕망을 쏟아내는 우리의 기도와 다른 점입니다.
셋째는 우리 자신의 영적 필요를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스리는 삶, 주님의 제자됨이란
용서와 회걔, 시험이 있음을 인정하고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사는 제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현세적인 부와 성공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필요가 채워지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고 제자로서 거룩한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기도에 대한 비유(5-8절)를 하나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에 등장하는 친구는 친구라고 부를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유대인에게는 나그네를 대접하거나 객이나 고아나 과부 등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책임을 소중히 여깁니다.
아브라함이나 롯이 하나님의 사자를 대접한 것 역시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친구는 나그네도 아니요
자신의 친구인데 친구의 간청을 일어나는 것이 귀찮아서
청을 거절하는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한마디로 나쁜 친구, 악한 친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청을 함으로
결국 일어나 청을 들어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가장 못된 인간과
가장 선하신 하나님을 대조시킵니다.
이런 사람도 계속 간청하면 들어 주는데,
가장 선하신 하나님은 얼마나 더 잘 들어 주시겠느냐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비유를 잘 못 해석하여,
하나님이 이 못된 친구처럼 귀찮을 정도로 간청해야
들어 주시는 분으로 오해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뜻을 뒤집어 놓는 일입니다.
동일연장선에서 보면 악한 친구가 귀찮게 해서 들어주니
하나님도 강청하면 들어준다는 차원에서 이해하면
하나님과 악한 친구가 동격이 됩니다.
하나님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되어지는 분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구하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그리하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어 줄 것이다”(9절)라고 권하시면서
“구하는 사람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사람마다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어 주실 것이다”(10절)하십니다.
친구는 간청해야 주는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귀찮을 정도로 간청해야 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꺼이 응답하신다는 뜻입니다.
안심이 안 되셨던지 예수님은 또 다른 비유를 드십니다.
생선을 달라는 아들에게 뱀을 줄 아버지가 없고
달걀을 달라는데 돌을 줄 아버지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못된 친구의 비유와 못된 아버지의 비유를 해석하는 열쇠는
13절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들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에 숨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신 것이 아니라
넉넉한 신뢰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또한 기도로써 구할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시는 요점, 도전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무엇이든지 필요를 구하는 것은 주신다는 차원이 핵심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성령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제자는 삶의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자녀가 필요할 때 부모를 구하면 해결됩니다.
부모의 손에, 통장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거기에서 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면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삶 속에서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최고의 선물이 성령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나 자주 기도하고는 잊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우리가 정작 무엇을 가장 우선으로 구해야 하는지
알고 기도하는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 최고이자 먼저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 사람의 신앙(신학)의 요약이고
그 사람의 내면 세계를 비추어주는 거울이라는 말을
속깊게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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