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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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16장_불의한 청지기와 물질에 관하여
- 느헤미야강
-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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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7(화) 새벽기도회
불의한 청지기와 맡겨진 물질에 관하여 <누가복음 16장>
15장에 기록된 세 개의 ‘잃어버림의 비유’는
모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눈을 돌려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에게 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맡아 관리하였는데,
자기에게 맡겨진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고
그것이 주인에게 알려져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이 청지기는 해고되기 이전까지 남은 기간 동안에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불러서 빚을 절감해 주고
빚문서를 고쳐 줍니다(5-7절).
보통 주인이라면 이 사실을 알고 청지기를 감옥에 넣을 것이나,
이 비유의 주인은 오히려 그를 칭찬합니다(8절).
여기에 이 비유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주인이 그를 칭찬한 이유는
그의 부정한 속셈과 행동 때문이 아니라
다가올 재앙에 대해 지혜롭게 준비했기 때문입니다(8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8절)
세상적인 거래 관계에서 악한 사람들도
이렇게 상황을 파악하고 민첩하게 대응한다면,
영원한 나라와 마지막이 있음을 아는 믿는 사람들은
더욱 그럴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제자들에게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에
맞아들이게 하여라”(9절)고 말씀하십니다.
“불의한 재물”은 “불의하게 번 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불의한”은 “유한한” 혹은 “덧없는”이라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그 재물이 없어질 때”(9절)
즉 이 세상에서의 삶은 결국 끝나고 영원하신 주인 앞에서
결산할 날이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 날에 하나님 나라에서 나를 지지하고 환영할 사람들이
나의 진정한 “친구”(9절)입니다.
따라서 위의 비유에서 나온 청지기처럼
아직 남아 있는 기간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을
슬기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눈여겨 보아야 할 표현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물질을 잘 사용하는 사람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10절)이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큰 일” 즉 하나님의 일에도 충실할 것이고,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10절) 즉
언젠가는 사라질 물질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은
“큰 일” 즉 하나님의 일에도 불의하게 행동합니다(10-11절).
이 땅에서 우리가 가지는 물질은 “남의 것”(12절)입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고, 현세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잠시 나에게 맡겨진 것일 뿐입니다.
잠시 나에게 맡겨진 “남의 것”에 충실하게 혹은
신실하게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너희 몫” 즉
영원히 누릴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는”(13절)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재물을 섬기면 하나님이 도구가 되고,
하나님을 섬기면 재물이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파 사람들”(14절)을 위해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날마다”(19절) 호화롭게 사는 한 부자와
그의 집에서 빌어 먹는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부자는 오직 자신의 쾌락만을 위해 살았고,
나사로는 부자의 “대문 앞”(20절)에서 병든 몸으로 누워
부자의 집에서 나오는 음식 쓰레기로 허기를 채웠습니다.
부자는 자신의 “불의한 재물”(9절)로
나사로를 친구로 삼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죽어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22절) 즉 천국에 갔고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나사로가 천국에 간 것은 거지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고,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물질에 빠져 자신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입니다.
부자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나라를 알았다면
자신에게 맡겨진 “남의 것”(12절)으로
자신의 배만 불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한 사람이 가진 재물의 양이
그 사람의 믿음의 양과 비례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로써 그 믿음을 깨뜨리십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양은
그 사람이 나눈 물질의 양과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당시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에 따르면
나사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가난과 고통은 죄로 인해 받는 징벌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시편의 영성을 지지하십니다.
시편은 ‘아나빔’(가난한 사람들) 즉 하나님을 믿기에
거룩하게 살기를 힘쓰고 그 결과로 인해
가난해진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부릅니다.
결론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물질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만 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는 부자이고
우리 역시 주위에 나사로와 같은 이들이 있습니다.
나사로를 살피는 일은 이 땅에 주어진 시간과
물질이 있는 동안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은 사명입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이 땅에서 주어진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앞에서 말씀하신 재물에 관한 가르침에 따라
이 비유를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잠시 맡겨진 물질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관리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특히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넉넉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은 천국에 영원한 보물을 쌓아 두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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