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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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2장_크고 높으신 하나님 앞에

  • john
  •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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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장에는 가버나움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묘사되어 있다.

1절에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집에 계신 소문이 들렸다고 했는데,

나사렛에서 자라신 예수님은 갈리리 북쪽에 위치한 가버나움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그곳을 복음전파의 전초기지로 삼으셨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나자 그 집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여기서 예수님은 네 사람에게 이끌려온 중풍병자를 고쳐주시는 이적을 행하셨다.

이어지는 말씀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레위가 바로 마태와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당시 갈리리 지역의 세리들은 그 지역을 다스리던 이방인(에돔) 헤롯의 앞잡이로 인식됐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유대 사회 가운데 죄인 취급을 받던 레위를 제자로 삼으시며

여러 죄인들과 함께하셨던 것을 볼 수 있다.

본문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시는 장면과,

안식일을 범하였다는 지적에 대해 당신께서 안식일에 주인이 되심을 선포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 본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제 예수님의 반대세력이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로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대립각을 세웠는데

물론 이들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들이 지금껏 목숨보다 귀히 여기며 지켜왔던 법도를 무시하고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이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행동을 보이셨는데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이 차이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았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하는데 있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의 가르침, 행하시는 이적을 보며 이분이야 말로 오실 메시야임을 믿고 따랐지만,

다른 한 부류는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거부하고 정죄했다.

많은 지식을 가졌고 뜨거운 종교적 열심을 품었지만

그들은 내 경험, 내 지식, 내 이성 즉 라고 하는 자아를 넘지 못하고 결국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안에도 이러한 모습이 있을 수 있다.

우리도 지금까지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것만을 의지하며,

우주보다도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스스로 제한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에 내 지식이나 내 감정에 맞는 말씀만을 좋게 여기는 모습이라든지,

또 다른 사람을 바라 볼 때도 하나님의 기준이나 관점이 아닌 내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 모습 등이다.

이러한 우리의 모습이 결국 예수님 당시에 라고 하는 자아에 갇혀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지 못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무신론자만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을 더 위에 둔다면 그 역시 예수님과 대립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 또 일하심은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크고 높으시다.

그분 앞에 선 우리는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 감정이나 전통에 하나님을 묶어 두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것을 능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진정 우리의 하나님 되시는 삶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발견하여 그 은혜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