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마가복음 3장_열둘을 세우셨으니
- 느헤미야강
- 2018-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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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생애는 사람들, 그가 쓰실 사람들을
선택하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열두 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을 때 제자들을 부르셨고,
지금도 제자들을 부르고 제자들을 세우십니다.
왜 제자들을 부르고 세우실까요?
첫째로 그 이유는 그들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3절,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원하셨던 자들의 자격이 이렇게 열거되어 있지 않고
그냥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을 선택이 전적으로 주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라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 선택의 기준은
세상 사람들이 선택하는 세속적인 기준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예수께서 선택하신 제자들에게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부족한 사람들이었다라는 사실입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이 주님께 붙들림을 받았을 때
그들이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람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이름과 연관해서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시몬에게는 반석인 베드로라는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복음서를 살펴보면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변덕스럽고
불안정하고 흔들림없는 반석의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몬을 변화시켜 반석처럼 쓰시겠다는
주님의 기대가 들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우레의 아들, 천둥의 아들이라 하셨습니다.
이들은 실제로 벼락같은 성향을 가졌습니다(눅9;54).
이런 그들이 하늘의 메시지를 천둥처럼 증거하는 사도가 됩니다.
베드로와 유다 역시 동일합니다.
베드로는 삶과 죽음의 위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약해질 수 있는지,
계산적이고 이해에 밝은 유다가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두 사람다 똑같이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났고 유다는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습니다.
실패와 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주님앞에서 바르게 붙들리면
언제나, 누구든지 다시 설수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입니다.
내가 가진 약점, 내가 가진 허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같은 사람을 쓰실 수 있으시다는 은혜를 주십니다.
제자로 부르신 두 번째 이유는 그들과 함께 하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14절,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 사 전도도 하시고 거기에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이 선택의 중요한 목적이 함께 하시려고 있습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역사의 주님. 이 놀라우신 인류의 구세주.
예수그리스도가 저와 여러분과 함께 있고 싶어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그분은 사랑의 대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인격적 교제의 대상. 사귐의 대상. 같이 있고 싶어해서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친교의 목적을 넘어선 또 하나의 목적이 있습니다.
같이 있는 동안 그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훈련하고 싶어하십니다.
함께 있는 기회를 통해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를 전달하시고
주님의 삶을 보여 주시고 그래서 우리도 주님처럼 살아가기를
주님은 기대하신 것입니다.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그분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을 수가 있을까요?
같이 있지 않고는 그분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볼 수가 있습니까?
같이 있지 않고는 어떻게 그분을 따라갈 수가 있을까요?
문제는 오늘 이것을 우리에게 적용할 때 오늘 이 시대.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주님과 같이 있을 수가 있을까요?
말씀과 기도로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말씀훈련과 기도훈련입니다.
내가 성경 말씀을 펼칠 때 나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기도함으로 나는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래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말씀에 대한 애정이 없습니다.
무릎 꿇고 싶은 맘이 없습니다. 기도의 목마름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됨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2,000년처럼 예수님과 직접 대면할 수는 없지만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고,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우리를 보내사 전도하고자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14절,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함께 하고 주님으로부터 훈련을 받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해야 할 목적은 전도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순종하게 되면 주님은 전도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
그것이 15절의 말씀입니다.
‘귀신을 내어쫓는 권세도 있게 하려 하심이러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주님의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전도입니다.
주님의 지상명령, 마지막 명령도 전도입니다(마28;18-20, 행1;8).
복음 전도만이 세상을 바꿀 수가 있다.
복음만이 사람들을 살게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런 자긍심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 대의 비극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한 교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은
그 교회안에 전도하는 교인이 별로 없거나
전도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얼만큼 훈련을 받았습니까? 얼마나 무릎 꿇어 기도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알기 위해 성경을 펼쳐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이 말씀을 붙들고
이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고민했던 흔적이 내 삶속에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합니 다.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서 일하고자 하십니다.
고통받는 이웃들의 상처를, 그 아픔을 느끼며
그들에게 찾아가는 주님의 손이 내 손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들의 아픔을 짊어 지고 기도하는 중보기도의 손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들에게 전해줄 메시지를 위해서 말씀을 붙드는 손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리고 이 복음을 가지고 찾아가는 손이 될 수가 있을까요?
그 때 비로소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우리의 손이 그리스도의 손이 될 때
우리를 통해서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입니다.
세상은 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열두제자를 부르셨습니다.
동일한 목적으로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앞에 우리는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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