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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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8장_제자;땅의 생각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

  • 느헤미야강
  • 201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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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은 두번에 걸쳐 백성을 먹이시는 이적을 베푸셨습니다.

6장에서 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먹은 사람은

남자 성인만 5천명이었고

8장에서는 남자 성인 4천명에 이르는 백성을

떡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먹이셨습니다(1~10).

주님께서 이와 같이 동일한 이적을 두 번이나 베푸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사건을 경험하는 그 당시에는 제대로 깨닫지 못해서

남은 떡 광주리를 가져오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합니다(14~21),

후에 복음을 증거하면서 그 의미를 놀랍게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목자가 양을 먹이시듯 먹이시는 분입니다(23).

주님은 이렇게 자기 백성을 책임지고 먹이시는 분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놓고서

염려하지 말라고 명하실 수 있으십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6;30,31).

 

여러분은 이렇게 먹이시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경험하셨습니까?

우리는 먹고 사는 문제를 피해서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가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서도 안 됩니다.

제자들은 이런 놀라운 이적 체험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15절에 주님께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하셨을 때

이것을 육신의 떡 문제로 이해했습니다(14~21).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제자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생각은

오직 땅에 관한 생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땅의 생각으로 충만해지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영적 체험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고,

유익하게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보고 들은 것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했고,

그랬다면 빵 문제로 인해 근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러 가지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은 그들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고 믿으라는 뜻이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믿는다면 질병이나 장애나

먹고 마시는 문제로 근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관심사에서 벗어나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고 그 나라를 위해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바리새파 사람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말씀을

빵에 대한 말씀으로 오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 번이나 깨닫지 못하느냐?”(17, 21)고 책망하십니다.

깨뜨리다다다르다는 말이 합쳐진 깨닫다는 말은 흥미롭습니다.

무뎌진 마음과 무지와 불신을 깨뜨리고

진리에 다다르는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기적들과 그분의 말씀들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

이어 본문 마지막에 제자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34)은 곧 제자를 말합니다.

제자는 스승이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leadership이 아니라 followership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followership의 두 요소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자기를 부인하는것입니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과 목적과 야망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시려는 길은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일과 같습니다.

스승이 하신 것처럼 제자도 해야 합니다.

스승이 사신 것처럼 제자도 살아야 합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이고 무거운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가라는 것이고,

그들이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들을 외면하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손해 보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 목숨을 잃는 것”(35)과 같은 일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인 것에 목숨 걸고 사는 삶은

결국 생명을 잃는 결과에 이를 것입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의미가 없고(36)

목숨을 주고 바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37).

목숨은 그토록 귀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얻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모태 안에 있는 생명이 귀하다면 태어난 이후의 생명은 더욱 귀합니다.

그렇다면 이생 이후에 이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더 더욱 귀합니다.

그것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면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목숨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태아의 생명이 태어난 이후의 생명을 향해 가듯,

이 땅에서의 생명도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향해 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다면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38).

물질이 전부이고 육신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때로 박해합니다.

그 불신이 음란하고 죄 많은”(38) 세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세대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제자들은 고개를 들 것이고

그들을 박해 하던 사람들은 고개를 떨굴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서는 진리를 환히 보아야 합니다.

희미하게 보는 것으로는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초점은 지금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내가 주님 앞에 설 때

주님께서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38).

일평생, 매일 매일 어떤 손해와 위협을 감수한다 할지라도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다인 것처럼 그리고

주님 앞에 설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삶은

땅의 생각으로 가득한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으십니까?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여러분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시는 이 아침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