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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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5장_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 이형원전도사
  •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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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말씀을 보면 크게 3가지 사건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사건은 바리새인들과 구전 율법에 대한 논쟁이고, 두 번째 사건은 가나안 여자의 딸을 고쳐주는 사건 마지막으로 떡 7개와 작은 생선 2마리로 4천명을 먹이시는 사건이입니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장로들의 전통을 범했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비난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전통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그들의 전통 즉, 구전 율법이 그 정신은 잃어버린 채 형식만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금하는 것은 위생적인 문제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혹시 나도 모르게 부정한 것을 만졌을 수 있기 때문에 손을 씻으므로 부정을 씻어내고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곧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만든 세부조항이었습니다. 이러한 구전 율법은 당시 바리새인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키는 조항 중 하나였기 때문에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모습은 모두에게 이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그들의 말을 듣고 잘못을 꼬집어 이야기 합니다. 그것은 곧 고르반에 대한 말씀인데 하나님께서 네 보모를 공경하라고 하신 말씀을 그들이 만든 구전율법인 고르반을 들어 오히려 언약을 어기고 있는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려졌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부모님 공경하지 않고도 하나님께 드렸으므로 부모님께 드릴 것이 없다라고 핑계하는 그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배하고 마음은 가까이 있지 않음을 또한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지 헛되이 경배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배하고 믿음 생활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 말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믿음생활을 하기 위해 나간다고 이야기 하면서 마음으로는 주님을 예배하지 않고 다른 목적 예를 들면, 커뮤니티에 들어가기 위해 혹은 장사를 하기 위해 때로는 교회안에서 나의 지위를 누리고자 하는 것들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새벽에 아침을 깨우며 이 자리에 나와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이러한 분명한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내가 새벽에 나오는 것이 나의 성공과 안정된 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의 뜻을 알아가고 그 뜻대로 행하기 위함이길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절과 거짓 증거와 훼방입니다. 이 악함은 곧 십계명의 6계명부터 9계명까지의 내용과 일치하는데 이것을 통해 예수님께서 율법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강조하고 계심을 분명히 알 수 있게됩니다.

두 번째 사건으로 두로와 시돈 지방에서 가나안 여인을 고치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자신을 개로 비유하는 예수님의 모욕적인 말 앞에서도 그 믿음을 져버리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개로 낮추면서 까지 예수님의 은혜를 받기를 간구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여인의 믿음을 크다고 칭찬하시며 그 딸을 고쳐주는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이 두 번째 사건이 그 앞에 바리새인과의 논쟁 다음에 나온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배치는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그 율법을 잘 지킨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그 형식만 남았고 그 마음이 하나님께 멀어진 반면 오히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여인은 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까지 내가 해온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더군다나 마음이 없는 행위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 분이 베푸시는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오병이어의 사건과 유사하게 베푸신 4천명을 먹이시는 사건입니다.

사흘동안 예수님과 함께 한 자들이 아마도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이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기적을 베푸셔서 떡 일곱게와 생선 두어마리로 그들을 배불리 먹게 하십니다.

제가 여기서 주목해서 봤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다는 단어의 원어의 뜻에는 내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말로 가깝게 해석을 해보자면 애간장이 탄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와 함께 한 무리들이 음식이 없어 배가고픈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그 불쌍히 여기심이 그냥 동정이 아니라 애간장이 탈만큼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필요가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만큼이나 애간장을 태우시면서 그것을 채워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형식적으로 예배하며 내 유익과 나의 삶의 유익을 더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되 그 마음에서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그에 따라 필요를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