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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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8장_하나님 나라의 삶
- 느헤미야강
- 2018-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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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모두 천국(하나님나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천국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이유도 하나님 나라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그것이 혹시 예루살렘에 이루어질 위대한 다윗 왕국이 아닐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 나라가 임하면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까?
아마도 제자들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그래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1절)
그러자 예수님은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3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들과 같이 된다”는 말은 4절에 나와 있듯 자신을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서로 높아지기를 다투는 세상에서 스스로 낮은 자리로 내려 서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사람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무시 당하고 사람 취급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치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 그 나라가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5절).
예수님은 “작은 사람”에 대한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6절)은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대부분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그 중에는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고 차별받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다수였습니다.
“걸려 넘어지게 한다”(6절)는 말은
“믿음을 버리게 한다”는 뜻입니다.
죄짓게 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겉으로 하찮아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하여
그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죄에 빠지게 하는
도구가 되지 말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면 그 사람의 영원한 생명을 빼앗는
중대한 죄를 저지르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7절)는
현실을 인정하십니다.
죄성으로 인해 우리는 언제나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자, 생명과 심판의 말씀을 하시면서
이 모든 가르침을 “잃어버린 양의 비유”로써 마무리하십니다(10-14절).
하나님은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사람이라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누구나 같은 무게와 값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를 대하든 하나님의 눈으로 대하여
누구에게나 한결 같아야 합니다.
5-35절 말씀은 하늘 나라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일로 인해 꼬인 것을 푸는 것이 용서입니다.
“네 형제”(15절)는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가 아니고 믿음의 형제입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를 말합니다.
그럴 경우,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 공동체를 시끄럽게 하지 말고
먼저 일대일로, 사적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만일 그래도 되지 않으면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문제를 해결해 보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에 한하여 공동체에 알리고
교회의 결정에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돌아설 때까지 멀리하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배려를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20절)
이 말씀은 문맥상 합심기도의 능력이 아니라
교회의 권징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확인시켜 주는 말씀입니다.
이어 형제를 용서할 때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21~22).
그리고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23~35).
왕에게 만 달란트 빚진 자가 은혜로 탕감 받았으나
도리여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빛진 동료를 옥에 가둠으로
자신이 옥에 갇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은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이런 방식으로 대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35).
이 비유에서 왕은 하나님을 말하고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은 우리 자신을 말합니다.
빚은 죄를 뜻하고, 1만달란트(노동자가 20만년 노동의 댓가)의 빚은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상상할 수 없는 죄의 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그 죄를 모두 사해 주십니다.
아무 조건 없이! 그것이 믿는 자가 받은 은혜입니다.
만일 이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형제가
우리에게 행하는 잘못을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내 형제가 나에게 하는 잘못이 아무리 커도
내가 하나님께 지은 잘못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용서의 은혜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은 내가 받은 용서를 잊었다는 뜻입니다(35절).
묵상:
하나님의 다스림에 마음을 열면 먼저 나의 내면이 변화하고,
내면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관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대우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영원한 가치를 알아 보고 그것에 따라 사람을 대합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다른 사람을 밟고서라도 높아지는 것이 목표인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신을 낮추어 다른 사람의 발판이 되어 줍니다.
그렇기에 땅의 나라에서 무시 당하고 차별 당하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높임 받고,
땅의 나라에서는 높임 받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서는 낮아집니다.
사실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제 위치를 찾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를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는 눈에 보이게 도드라져 보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들어간다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막고 있는 죄의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단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께 드린 상처를 모두 합하면
일만 달란트에 달합니다.
그 모든 것을 용서 받았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런 은혜를 입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그를 미워 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가운데 있는 사람은
내면의 변화와 더불어 행동의 변화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작고 연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누군가를 용서하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드러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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