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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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19장_최소한이 아닌 최대한으로 살라
- 느헤미야강
- 2018-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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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9장은 크게 이혼문제와 약자에 대한 관심,
부자와 낙타이야기를 통한 이웃사랑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지금까지 계속된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
하나님의 다스림이 임하고 그 안에 거하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이혼의 문제에 대해서서는 핵심은
인간의 완악함이 힘없는 여인인 아내를 미워하게 될 때에
얼마나 악하게 작용될 수 있는지에 관한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3).
당시 유대교에 중요한 두 가르침의 전통이 있었는데
진보적인 힐렐 학파와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였습니다.
힐렐 학파는 어떤 이유로든지 남자는 이혼할 수 있다고 가르쳤고
샴마이 학파는 아내의 음행 만이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이혼에 대한 근거 본문은 신명기 24:1~4이었는데,
주님은 창조 때 하나님께서 결혼을 제정하실 때의 원리로 그들을 이끌어가십니다.
이 결혼의 원래의 뜻에 의하면 이혼은 허용될 수 없다.
결혼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이기에 사람이 자기 뜻으로 나눌 수 없다.
신명기 24장의 본문도 이혼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완악함이라는 것이 아내를 미워하게 될 때,
얼마나 악하게 작용하는지를 아시고
하나님께서 여인을 보호하기 위한 안전책을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당대 유대의 어느 학파의 손을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결혼의 본질과 하나님의 원래 의도를 설명하심으로써
어떻게 해서든지 율법을 피하여
자기들의 뜻을 관철해보려는 인간의 죄성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2.
어떤 부자가 예수께 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16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부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과 다른 율법 중에서
이웃과 관계되는 계명들을 예로 드십니다.
그러자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계명들은 다 지켰다고 말하면서
“아직도 무엇이 부족합니까?”(20절)라고 묻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율법 규정을 잘 지켜 왔다고 믿었고
따라서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율법 규정을 지킨 것은 하나님의 뜻을 ‘최소한’ 이룬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웃에 대한 율법적 의무를 충실히 지켰다고 장담했지만
그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이웃 사랑에 있어서 최소한에 만족하고 안주 했다는 뜻입니다.
그 문제를 알아 보신 예수님은 그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21절).
그러자 그 사람은 근심을 하면서 떠나갑니다.
최소한의 기준을 넘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최소한의 율법적 의에 대한
그의 헛된 믿음을 허물어뜨리십니다.
그 사람이 떠나간 후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24절)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25절)라고 묻습니다.
당시 유대교인들은 한 사람의 부의 분량은
곧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이라고 믿었습니다.
만일 부자가 천국에 갈 수 없다면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능성이 없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26절)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아주 중요한 진리를 전하십니다.
구원 받는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따낼 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선물’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를 쌓아 하나님의 커트라인을 통과할 수 있다는 생각,
마치 부자 청년처럼 최소한의 선만 잘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너무 얕잡아 본 것이고
자신을 너무 높이 본 까닭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주어지는 선물이지만,
그 선물은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갑니다.
용서 받은 자가 용서하듯, 은혜 받은 자는 은혜를 베풉니다.
그는 더 이상 율법의 ‘최소한’에 만족하거나 안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능력을 따라
‘최대한’을 향해 부단히 나아갑니다.
진정한 부자는 하나님께 부한 사람입니다.
마지막 날이 되면 이 땅에서 부자가 하나님 앞에 거지로 드러나고
이 땅에서 가난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부자로 드러날 것입니다(30절).
그 영원한 나라를 알고 믿는다면, 이 땅에서 물질에서 자유해지고,
그렇기에 신실한 청지기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거룩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새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이 되는 것이고,
물질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죄 된 본성을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원래 의도하신 창조의 섭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제자에게는 더 이상 ‘율법의 최소한’이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최대한’이 기준입니다.
그 원리는 제자의 모든 생활에 적용 됩니다.
가정에서도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최소의 사랑이 아니라
최대한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자에게는 더 이상 물질이 목적이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알기에 영원한 것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물질을 기꺼이 사용합니다.
언제든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가난할지라도 부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고후6:10)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했듯이
내 뜻을 교묘하게 관철시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 청년처럼 종교적 성공에 대한 추구도 아니며
주님을 따르는 것은 더욱이 돈을 사랑하는 길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처럼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나아가고
그 은혜를 구하는 길입니다.
자신이 어린 아이임을 알고 인정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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