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마태23장_척이 아니라 청(聽)이다
- 느헤미야강
- 201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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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3장은 39절 꽤 긴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저주하는 것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의 '독사의 새끼들아' 라는 심한 말까지 등장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평가하기로
거룩하고 바르게 산다고 생각했는데
예수님의 그들을 향한 평가는 '외식하는 자' 였습니다.
본문에는 ‘화 있을진저’로 시작하는 말이 7번 반복됩니다.
외식이란 겉과 속이 다른 것을 말합니다.
외식하는 자라고 번역되는 그리스어 '휘포크리테스(hypocrite)'는
배우(actor), 따라쟁이(dissembler),
~척하는 사람(pretender)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을 말합니다.
실제 모습은 그렇지 않는데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를 싫어할뿐더러,
자신의 참 모습이 무엇인지에 관심도 없습니다.
그냥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고 존경받으면 끝입니다.
오로지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이 목적인 인생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외칩니다.
일곱가지 화 있을진저 하시면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이야기 하지만
1-7절까지만 읽어보아도 그들의 삶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말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3절),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자신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들(4절),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사람들(5절),
윗자리, 높은자리, 문안받고 칭함받기 좋아하는 사람들(6,7절)
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중요한 알맹이는 버려버리고
껍데기만을 고수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눈먼 사람들입니다.
칭찬에 눈이 멀었고, 사람들의 평가에 눈이 멀었고,
인정 욕구에 눈이 멀어 버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눈 멀먼 하나님의 진실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맹인인데
자신이 눈먼지도 모르고 자신이 맹인이면서
다른 사람의 길을 인도하겠다고 나선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을 가리켜 위선자, 외식하는 사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겸손히 제 모습을 살핍니다.
목회나, 사역의 자리에서, 성도 섬기는 자리에서
겉치레에만 관심 갖는 자가 아닌지 돌아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에게는 그런 모습이 없습니까?
잘 들여다보면 우리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을 중요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생활 오래한 사람일수록 더 그러기 쉽습니다.
교회 오래다닐수록 외형과 의식과 형식에 더 치중해 버리기 쉽습니다.
오래일수록 은은함과 깊음이 배어 있어야 말입니다.
어떻게 해야 외식하는 바리새인처럼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오늘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26절)
겉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이고 안을 깨끗이 하는 자는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비입니다.
보이지 않는 안을 먼저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아무도 보지 않는 안을 깨끗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안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안이 깨끗하지 않으면 겉이 아무리 깨끗해 보여도 소용없습니다.
안을 깨끗이 하면 겉은 자동적으로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보이는 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안을
깨끗하게 관리할 수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앞에서 얼마나 죄인인지
내버려 두면 영원한 죽음가운데 버려졌을 존재인데
십자가 은혜로 살게 되었으니 하나님 다스림 가운데
날마다 거하겠다는 감사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코람데오) 살아야 합니다.
'신전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항상 앞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가와 인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늘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이 아니라
자기의 내면을 하나님 앞에 비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그 내면이 거룩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비결입니다.
그래서 '동행'이 언제나 해답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 순간마다 주님만 바라보며 동행하는 자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중심이고, 기준인 사람은 주님 닮은 것이 목표입니다.
하나님앞에 서 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말씀앞에 서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오늘의 말씀이 쓴뿌리되듯
듣기 좋은 말씀만 들으려고 하면
우리도 바리새인과 다를게 없습니다.
때로는 오늘같은 책망의 말씀도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앞에서 내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있는 척 하고, 아는 척 하고, 된 사람인 척 하는
겉치레에 눈이 먼 사람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 새벽에 저의 내면의 모습과 직면하고자 하니다.
연기자로서의 인생을 오늘 마쳐야겠습니다.
모든 가면을 벗고 나의 참 모습과 만나야겠습니다.
높임 받고 존경받는 자리에서 내려와
묵묵히 내 십자가를 지고 나를 부인하는 길로 내려가야 겠습니다.
말하고 가르치려는 자리에서
듣고 경청하며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겠습니다.
주의 음성을 들은 척하고 설교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듣고 설교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아침 내가 중요하게 간직하고 있던 가면들을
주님 앞에 다 내려 놓기 원합니다.
이 새벽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며 드는 나를 깨우는 경구, 그것은
"척하는 사람이 아닌 청(聽-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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