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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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1장_상처를 보아야 치료된다

  • 느헤미야강
  • 2018-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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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3대에 걸쳐 긴 기간동안 예언했으나 
주로 히스기야 때 많은 예언을 했습니다. 
히스기야 왕때 있었던 신앙 부흥에 산파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같은 시대에 유다에서 활동 한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는데 이사야보다 조금 뒤에 활동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주로 예루살렘에서 활동했다면, 
미가 선지자는 지방인 가드모레셋 출신으로서 지방에서 활동했습니다. 

미가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각기 ‘들으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1:2; 3:1; 6:1). 
미가 선지자는 아모스나 이사야와 같이 우상숭배와 사회적 불의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로 지적합니다. 

미가는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위해서 성전, 하나님의 처소에서 나오시는 환상을 먼저 보여주십니다(2~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 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밝으실 것이라.” 
땅의 높은 곳을 밟고 서신 심판자 앞 에서, 4절,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집니다(4). 
심판당하는 이유는 야곱 의 허물, 이스라엘 족속의 죄 때문입니다(5). 
이어 6-7절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 임한 심판을 이야기합 니다(6). 
사마리아는 앗수르에게 짓밟혀 바닥이 다 드러난 아무 것도 없는 폐허가 되고 말것이다(6). 
죄의 값을 치를 것이라 합니다(7). 

그러고 이 심판은 남유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예언합니다. 
그 상처가 깊어서 치료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는데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렀다고 말씀합니 다(9). 
거짓 선지자들이 항상 상처가 그리 깊지 않고 심각하지 않다고 했으 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다 미가처럼 말했습니다. 
미가는 거의 벌거벗고 들개처럼 부르짖고 애통하면서 다가올 심판을 바라 보라고 외쳤습니다(8). 
그리고 미가 선지자는 유다의 성읍들을 하나 하나 열거하면서 유다에도 임하게 될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운 모습을 상기시킵니다(11~15). 
유다의 성읍들이 가진 이름의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비참한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합니다.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주는 달콤하고 얄팍한 위로는 즐겼지만, 
네 상처 가 치명적이라고 말하는 미가와 같은 선지자들의 말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들의 완악함입니다. 
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처참하게 먹히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도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은 그들의 미련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1장이 유다의 성읍들을 들어 죄악을 고발하고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은 깊은 상처의 환부가 다 드러나지 않는다면 치료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먼저 그들 자신의 환부, 그들 자신의 죄상을 보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야 죄를 깨닫고 치료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하시는 일입니 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닫습니까? 
자기 자신의 깊은 상 처를 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삶은 여기서 시작하고 여 기서 이루어집니다. 
참된 복음은 우리의 내면과 악함을 드러내고 그 안에서 치유가 일어나게 합니다. 
나쁜 소식이 없이 주어지는 좋은 소식은 결코 복 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사랑과 위로 그리고 악함까지 드러내게 하시고 치 유하시는 그런 복음을 경험했는지요? 
그런 복음이 있습니까? 

끝으로 참 선지자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미가를 통해서 보게됩니다. 
미가는 유다백성을 책망하지만 교만한 고자세로 책망하지 않아고, 자기 스 스로 울고 애통하고 애곡하면서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 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통하 리니”(미1:8).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우상숭배에 빠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입니다. 
하지만 미가는 거만하게 이것을 말하지 않 고 애통해하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그랬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19장 41절에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면서 멸망할예루살렘 성읍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책망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도 쉽게 책망 합니다. 
눈물과 애통과 사랑이 없는 책망은 그 책망의 내용이 진리이고 사 실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에 전혀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미가서를 통해 도전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미 3:8). 
남을 책망할 때는 우리 자신은 책망할만한가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합 니다. 
미가는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에 부끄러움이 없는자였습니다. 
책망은 눈물과 애통으로 하십시오. 
우리 자신부터 믿음 위에 확고히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