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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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 1장 - 왜 아모스를 부르셨는가

  • 느헤미야강
  •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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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스는 남유다 드고아 사람으로 북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한 선지자입니 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통치기간으로 가장 풍요롭고 번성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통해 
참 믿음은 사회적 정의와 공평이 이루 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아모스 1장 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라고 나와 있습니다. 
아모스 1장 6절, 9절, 11절, 13절, 2장 1절 계속해서 등장하 는 표현이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입니다. 
아모스서는 아모 스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무엇을 연구해서 발표하거나 사사로운 견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모스는 단지 도구가 되어서 창조주 하나님이신 여 호와의 말씀을 증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모든 예언과 예언자에게 말 씀하시는 주체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도구”는 누구인가?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암 1:1)  
구약성경에서 사람을 소개할 때는 보통 누구의 아들 누구라고 소개를 합니다. 
예를 들어 브두엘의 아들 요엘,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 이새의 아들 다윗과 같이 소개하는데 
아모스는 그의 고향과 직업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잘 알려진 사람이 아닌 듯 싶습니다. 
드고아는 예루 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으로 남방 유다에 있는 마을입니다. 

 당시 제사장도 많고 선지자도 많았는데 왜 평범한 농부를 선지자로 불 렀을까요? 
그것은 선지자와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만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제사장들이 자격이 없는 가짜 제사장이 었고 선지자들도 가짜 선지자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쓸 수가 없었 습니다. 
열왕기상 12장 31절에 보면 여로보암 1세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서 단과 벧엘 두 군데에 두고 
산당도 짓고 레위 자손이 아닌 보통 백성 으로 제사장을 삼았습니다. 
짐승 몇 마리만 갖다 주면 무조건 제사장으 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이 모두 순 가짜들이었습니다. 여로보암 1세, 2세 시대 모두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은 아모스는 제사장도, 예언자 가문도 아니었고
부모의 이름이 소개될정도이 사람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 쓰임받았습니다.
 
 왜 예수님은 어부나 세리 같은 사람들을 사도로 택하셨습니까? 
그 사도들 중에 보면 어디 명함 찍을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하나도 없 습니다. 
대부분이 어부이거나 세리였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중에는 창녀 출신이 많았습니다. 
왜 그런 사람들을 택하여 사도로 쓰셨을까요? 
그것은 당시의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 그리고 서기관들을 하나님께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완전히 어둠에 처해 있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일방적인 은혜이나 아모스에게서 선지자나 제사장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어떤 성실함이나 우직함, 책임감을 보셨던 것 아 닐까요? 
풍요를 소망하는 세대속에서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담대히 말 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본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아모스의 직업으로 소개된 목자는 히브리어 노케드 인데 구약에 딱 2번 쓰여졌습니다. 
이곳과 왕하3;4절에 모압왕 메사가 양을 치는자라고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단순히 고용된 목자가 아니라 재력가 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그런 그를 부르셨다는 것은 재력가이면서도 이웃 과 나눔의 삶을 실천했던 사람이 아니었을까를 짐작하게 합니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상은 누구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모스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북 왕국 이스라엘” 백 성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 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암 1:1) 
이 때는 여로보암 2세가 통치하던 시기입니다. 
아모스는 남 왕국 유다에 살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을 했습니다. 
북쪽에 단도 있고 벧 엘도 있고 금송아지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로부터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시온에서부터 북쪽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이상의 말씀을 주셨을까요? 
아모스 전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첫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경제적으로 부유했습니다.  
둘째, 국방과 안보에 대해서도 안정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은 사치스러웠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착취를 당했습 니다.  
넷째, 하나님의 백성이 부도덕했습니다.  
다섯째, 이런 문제가 많이 있지만 더 큰 문제는 영적인 문제였습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영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열심으로 드리는 예배 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배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단과 벧엘에 가서 열심히 드렸지만 그들의 예배는 타락된 예배였고 
부패한 예배였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누리는 부와 번영을 당연히 하나님의 축복이 라고 여겼지만 
선지자 아모스는 그것이 축복이 아니며 도리어 저주라는 사실과 
그들이 임박한 심판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왜냐하 면 그들이 쌓아 올리고 구가하던 부와 번영은 온갖 불의와 탐욕의 열매 였고 
소수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부와 번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회는 그야말로 착취와 불의와 거짓이 난무하는 사회, 정의가 사라 진 사회였습니다. 
탐욕은 결코 채워질 수 없었기에 그들은 계속해서 더 많은 쾌락을 추구할 뿐이었습니다. 
마음 한 켠으로 찾아 드는 불안감을 잠 재우기 위해서 그들은 다양한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를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형식적 예배 행위는 그들에 게는 두려움과 불편함의 진정제 같은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 다. 
선지자는 이것을 말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보편적 정의를 실현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참된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배는 드리면서 밖에서는 죄를 짓고 살았던 것. 
예배를 드리지만 삶은 부도덕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안 받으셨습니다. 
그런 예배는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질리 없기에 안 받으셨습니다.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는 아모스 1장 2절입니다.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 다” (암 1:2)  
여호와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부르짖는다고 나와 있습니다. 
북이스 라엘을 심판하시는데 예루살렘에서부터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부 르짖음이 최종적으로 이스라엘이나 주변국들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람, 다 메섹, 두로, 에돔, 암몬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남유다를 거쳐 최종 적으로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인데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그런에 여전히 먹고 마시며 즐기는데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면 서 여호와의 날만 기다립니다. 
그러나 외식하고, 형식적인 것만 남아 있 는 백성들에게는 그날이 심판의 날이 될 것을 몰랐습니다. 
이방나라, 주변국가들의 심판을 보면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했습니다. 

우리 역시 그렇지 아니한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21세기에 얼마나 잘 먹고 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여로보암 시대와 정말 비슷합니다. 
그런데 우리 가 지금 부패하여 타락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며 예배 를 드리나 
내 주변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내 사랑과 헌신, 
섬김이 필 요한 이들을 세우지 않는다면 
역시 이 시대의 북이스라엘의 죄를 짓고 있음의 다름이 아닙니다.
 
아모스가 예언한 것이 주전 755년이고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한 것이 주전 721년입니다. 
불과 34년 만에 망해버렸습니다. 
아모스가 우리에게 주는 큰 의미를 생각하고 
우리 일상의 삶을 거룩하게 해야 되겠고 예배도 바르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나라와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심판하실 때에는 그들에게 주신 양심과 자연법을 따라서 심판하시며, 
율법을 주셨던 자기 백성은 율 법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롬 2:14~15). 
그리고 그들을 심판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 는지를 보기 원하십니다. 
이 시대의 아모스를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