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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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야곱의 생애(2) 깨어진 가정 - 창26;34-28;9

  • 느헤미야강
  • 20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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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삭이 가장으로 있던 가정은 겉으로 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심 각하게 속으로 깨어진 가정이었습니다. 야곱은 거기서 자라납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아들인데, 이렇게 그 가정이 깨어 질 수가 있는가? 그의 가정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가정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질문이 생깁니다. 성경은 예수 믿는 사람의 가정이라고 해 서 문제가 없고, 아픔이 없고, 깨어짐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근심거리: 부모에게 근심이 되어버린 맏아들(26:33~34) 
첫째는 근심거리가 그 가정에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고부관계의 문제 였을 것입니다. 에서는 40세가 되어서 헷 족속의 두 아내를 얻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결혼은 부모와 장성한 자녀가 부딪히는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서로의 기준이 다르고 결과가 가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큽니다. 성경이 말하 는 것은 부모나 자식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입니다. 결혼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만나야 합니다. 인류 역사 최초의 결혼식인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주례사 는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 다”(창 2:24)입니다. 결혼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입니다. 여자도 물론입니다. 부모님들은 마음으로부터 자녀를 떼어내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생기는 근심 거리가 많습니다. 에서의 결혼은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습니다. 

지도력의 부재: 아버지 이삭의 지도력, 판단력 부재(27:1~4) 
이삭은 지도력이 없는 가장으로 보여집니다. 적어도 늙어서는 그랬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졌고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1차적으로는 육신의 눈이 어두워졌음을 뜻하지만, 이삭의 행동을 보면 영안도 어두워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죽음이 가까왔다고 생각한 이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에서를 축복하고자 에서와 은 밀하게 일을 진행합니다. 지도력이란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행동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위이고 영향력입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뜻을 떠날 때 지도력을 잃게 됩니다. 교회도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서 야 가장의 권위도 세워집니다. 이삭처럼 자기 뜻대로 하기를 원한다면 그 것이 이삭의 가정에 임한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음모: 어머니 리브가의 감시와 음모 1(27:5~17) 
지도력이 없는 가장의 옆에는 대개 강한 배우자가 있습니다. 리브가는 남 편이 에서와 하는 은밀한 대화를 엿듣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히 듣게 된 일이라기 보다는 이런 가정에서 보통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런 가정 은 편치 않습니다. 결국 리브가는 남편과 큰 아들의 중요한 음모를 알게 되고, 음모를 꾸밉니다. 결국 남편과 아버지를 속이고 두 사람은 이삭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거짓말: 아버지를 속이는 아들(27:18~29) 
깨어진 가정에는 거짓말이 있습니다. 음식을 해 온 야곱에게 이삭이 두 번이나 묻습니다.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 서로소이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잡아 음식을 준비했느냐는 물음에 야 곱은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 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야곱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 나님을 두려워할 수 있는 감각이 없었습니다. 오직 두려운 것은 복을 빼 앗기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기가 원하는 축복을 얻기 위해서 남이 되어야 했고 그는 아버지를 속여야 했습니다. 

증오: 원수가 된 형제 관계(27:30~41) 
뒤늦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돌아온 에서는 이 사실 을 알고는 크게 방성대곡을 합니다. 에서는 다시 한 번 간교한 동생에게 속았습니다. 이 일에 대한 에서의 반응은 야곱에 대한 증오였습니다(41). 그 증오는 동생을 죽이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였고 단지 아버지가 돌아가 신 후에 그 일을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속고 속이는 가정, 부모의 편애는 결국 쌍동이 형제의 살인극으로 결말을 맺게 될 위기로 치닫게 됐습니다.

계속되는 음모: 어머니의 음모 2(27:42~46) 
집안의 모든 일들을 감시하는 리브가는 에서의 증오를 발견하게 되자 다 시 한 번 음모를 꾸밉니다. 야곱을 에서의 증오가 풀리기까지 몇 날 동안 자기 고향 하란으로 보내어 오빠 라반에게 도피하게 하려고 이삭에게 또 거짓말을 합니다. 이번에는 야곱의 결혼을 이유로 라반에게 보내는 것을 승낙받습니다. 결국 정직해질 수 없는 삶의 연속입니다.

영적 무감각: 육신과 행위에 속한 사람, 에서(28:6~9) 
아버지가 야곱을 축복하여 신부를 찾는 여행길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에서 가 주시하여 지켜봅니다. 자기가 결혼한 헷족족 여인들이 부모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깨달은 에서는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딸을 아내로 취합 니다. 에서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이렇게 영적으로 꽉 막혀 있을수 있나 싶습니다. 빼앗긴 축복을 인하여 방성 대곡하였고 축복을 달라고 아버지 에게 크게 울며 부르짖었지만, 자신의 육신적 성향과 자기가 믿음이 아닌 행위에 속한 사람인 것을 인하여 돌아봄이 없습니다. 에서의 관찰은 너무 나 피상적이고 그의 해결방법은 매우 즉흥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이삭의 깨어진 가정은 결국 댓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부모의 편애는 사랑할 수 없는 형제 관계를 낳았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임으로써 자기 이익을 쟁취합니다. 속임으 로써 이익을 얻는 것들로 자녀들의 인생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맙니다. 
리브가는 ‘몇 날 동안’이라고 말했고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몇 날은 결국 20년의 세월이 되고 말았고 야곱이 돌아왔을 때 그 야곱을 그 토록 사랑했던 리브가는 그 아들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맙니다. 일의 모든 배후에 있던 리브가는 결국 아들 에서마저도 잃게 되었을 것입니다. D. 이런 깨어진 가정이 쉽게 치유되고 회복되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은 후에 큰 가족을 이루게 되었을 때 자신도 아들들로부터 똑 같이 속임을 당하게 됩니다.
 
2. 오늘 본문 자체로는 아무 소망도 발견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여주는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이삭이 비록 아들을 편애했고 판단력, 지도력을 상실한 가장이었으며 아내와의 신뢰가 없었고, 둘째 아들에게는 철저하게 속임을 당하는 아버지이지만, 그는 결국에는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축복을 받고 나간 후, 에서가 왔을 때 이삭은 심히 크게 떨었습니 다(27:33). 그가 떨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음에도 자기의 뜻을 성 취해보려고 은밀하게 일을 꾸몄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이루 어지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온 전율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야곱을 외조부 라반에게 보내면서 믿음으로 야곱을 축복합니다(28:1~6). 
아무리 인간이 계획하고 변경을 꾀하려 해도 결국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 님의 뜻입니다. 인간이 자기의 꾀로 하나님의 정하신 주권적 뜻을 거스리 거나 변경할 수 없습니다. 결국 이 깨어진 가정에서 일어난 음모와 음모 의 사건은 하나님의 주권적 뜻이 성취되는 방향으로 가게 됩니다.

3. 말씀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고백하게 되는 것은 “뜻이 이루어지이 다!”하는 것입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 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기도가 아닐까요. 이삭도 에서도, 리브가도 야곱도 다 하나님의 축복을 놓고서 자기의 뜻과 자기의 방법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입니다.
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의 뜻과 여러분의 계획이 다 이루어지셨습니 까? 여러분의 인생은 여러분이 뜻하고 원하고 계획하는대로 가고 있습니 까? 아니면 도무지 인생에서 여러분이 원했던 것, 여러분의 계획과 뜻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삭과 에서의 밀약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이 하나님의 사람의 깨어진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헤세드가 여전하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이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헤세드가 그쳤다면 이삭과 에서의 꿈은 이루어졌을 것입니 다. 그러나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헤세드의 증거입니다. 나의 계획, 기대, 뜻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감사의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인생을 지금까지 사는 동안 이루고자 했던 것들이 인생에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좌절된 꿈이 바로 하나님께 감사해야할 제목인 것들 입니다. 그랬기에 오늘날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 이 바로 하나님의 헤세드입니다. 사순절에 이것들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한 없는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왜 우 리 가정은 남들처럼 행복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예수를 믿는데도 저런 불신앙의 가정들보다도 더 문제가 많은 것 같아 보이는가? 많은 그리스 도인 가정들이 이런 고민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문 제 많던 가정이 화목해지고, 가정의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깨어진 가정의 문 제들을 경험하고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그 깨어진 가정에는 하나님의 헤세 드가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깨어진 가정에도 하나님의 헤세드가 따라온다 가 아니라, 깨어진 가정에는 하나님의 헤세드가 따라온다입니다. 깨어지지 않는 우리의 강하고 질긴 자아를 꺾으시기 위해서 쫓아오시는 하나님의 헤세드는 이삭의 가정 같이 깨어진 가정에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깨어짐을 통해서 때로는 이삭 같고, 때로은 리브가 같으며, 혹은 야곱 같은 우리들을 고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이번 사순절을 통해서 내가 감사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깨어짐 속에서 그분의 헤세드로 여전히 우리를 추적하고 계심을 아시고 감사하십 시오. 여러분의 뜻과 여러분의 계획이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낙심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히려 나를 향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