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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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야곱의 생애(4) 라반, 레아에게서 자신을 본 야곱 - 창29;1-14

  • 느헤미야강
  • 2018-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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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자기 자녀로 기르시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의 믿음 생활에 너무나 중요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는 방식을 이해하 지 못한다면 부모에게 반항하거나 불순종함으로 부모와 건강한 관계 안에 서 자라지 못할 것입니다. 야곱의 삶을 읽어갈때에도 살펴야 할 부분이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 자녀를 기르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1. 야곱이 하란에 도착해서 라헬을 만나고 라반의 집으로 인도되는 장면과  창세기 24장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아내를 찾기 위해서 종을 하란으로 보냈을 때의 장면과 매우 비슷합니다. 그 종도 우물가에서 물을 길러온 리브가를 순적히 만나게 되고 그 아비의 집으로 인도함을 받 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아브라함의 종의 이야기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 다. 
야곱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비록 그가 벧엘 광야에서 놀라운 환상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으며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서원 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야곱은 기도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도했던 아브라함의 종에게 순적 하게 리브가를 만나게 하신 것과 똑같이, 순적하게 인도하셔서 라헬을 만 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인정하 든 인정하지 않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섭리 가운데서 인도해오셨 습니다. 단지 그 때 그 때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섭리의 비밀들이 어떤 것들은 깨달아지기도 합니다. 섭리는 여러분이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2. 이제부터 야곱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나온 야곱,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고, 자기 집의 종들을 부리고, 어 머니에게 의존하고, 자기에게 익숙한 모든 환경에서 살아갈 수 없는 야곱 은 이제 고난의 학교에 입학을 한 셈입니다. 이제 다 왔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이것은 시작이었고 입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고난 의 학교에 입학한 야곱은 여기서 무려 20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야곱의 이름과 성격은 속이는 자입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였 고 그 속임 때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는 경쟁 속에서 강한 사람입니 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경쟁을 했던 사람입니다. 이제 고난의 학교에는 속이는 자가 속임을 당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임자를 만났습니다. 
 한 달 쯤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지낸 후에 라반이 말합니다. “네가 조카라고 해서 그냥 먹고 일만 해서야 되겠느냐? 삯을 요구해라. 야곱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봉사하겠다고 합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에 7년을 수일같이 여겼습니다. 7년이 빠르게 지 나갔고 야곱은 라반에게 내 아내를 달라고 합니다(21). 사람들을 초청하 여 잔치를 하고 밤이 되어 라반은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야곱의 장막으로 집어넣습니다. 아침에 보니 레아라(25). 속이는자 야곱이 속았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항의하자, 대답은 형이 아우보다 먼저다 라는 것입니다. 그순간 야곱의 머리를 스치는게 무엇이었을까요? 아우지만 형을 추월한 야곱, 순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던 사람 야곱, 그런 야곱에게 라반의 속 임수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형이 먼저이다. 라반은 계속 말합니다. 7일을 채우면 라헬도 주겠다. 그리고 라헬을 위해 서 또 7년을 봉사해라(27). 7년을 또 봉사했습니다. 라반은 야곱보다 한 수 위의 사람임을 드러냅니다. 라반은 야곱을 7년 동안 더 무상으로 부릴 수 있을 계산이 이미 서 있는 것입니다. 속이는 자가 완전히 속았습니다. 야곱은 라반이라는 불행의 거울을 통해서 자기를 보아야 했습니다.
 야곱은 그의 첫 아내가 된 레아에게도 속았습니다. 레아는 밤새 자 신의 정체를 레아라고 밝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옆에 누운 레아를 보고 깜짝 놀란 야곱은 레아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어젯 밤에 내가 라헬이라고 불렀을 때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 질문은 다시 메아리처럼 야곱의 마음에 들려졌을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 앞에 섰을 때 두 번이나 네가 누구냐 라고 묻는 아버 지에게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서이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레아가 자신을 속인 현장에서 자신이 아버지를 속인 것이 떠올려지지 않았을까 요? 레아가 질문을 하지 않았지만 이런 내면의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왜 당신의 아버지 이삭에게 에서라고 말했습니까?” 레아를 통해서 야곱은 자신을 보아야 했습니다. 비록 보기 싫은 모습이지 만, 거기에 자기 자신을 보도록 하나님은 야곱을 고난의 학교에서 속은 결혼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보게 하셨습니다.
 라헬은 혐의가 없을까요? 라헬은 그 밤에 무엇을 했고,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았을까요? 가부장적 사회속에서 아버지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 을지도 모릅니다.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라헬도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수동적이긴 했을지라도 라헬 역시 이 사기 결혼의 동조자인 것입니다. 

3. 야곱의 이야기 속으로 좀 더 깊숙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야곱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일주일동안 계속되는 결혼 축제 속에서 과 연 야곱이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레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라헬은요? 모두의 마음속에는 쓰디쓴 고통과 분노가 자리를 하고 있었을 것이고 그 것들은 쉽게 가라앉기는 커녕 날이 더해 갈수록 더 커졌을 것입니다. 야곱의 결혼의 첫 일주일로 상상력을 가지고 들어가보겠습니다.  야곱은 아직도 6일을 더 결혼 예식속에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부터 야곱의 마음은 상하기 시작했고 생각할때마다 속은 결혼 에 대하여 분노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는 일주일만 견디자는 심정으로 레 아를 대했을 것입니다. 속은 자신과 라반에 대한 분노 때문에 부인이 된 레아를 배려를 할 만큼의 여유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날짜를 표시해 가면서 첫 일주일을 사랑하지 않는 레아와 함께 보냈습니다. 야곱은 가장 불행한 인생의 일주일을 대면해야 했을 것입니다.  레아 역시 이런 상황 속에서 행복할 수 있었겠습니까? 
매일 느껴야만 했던 그 모멸과 거절감 역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6일만 견디면 라헬을 얻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남편과의 일주일 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혼의 축제 일주일이 지난 후, 동생 라헬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지내는 시간은 어땠을까요? 

4. 이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의 숨은 의도가 드러납니다. 다만 등장인 물들인 야곱도, 라반도, 레아도, 그리고 라헬도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가 숨어있고 진 행되고 있습니다. 라반은 자기의 음모가 하나씩 하나씩 맞아들어간다고 생각하고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 루어가고 계셨습니다.  아무리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경쟁하고 하는 가운데, 이기 고 지고 넘어지고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에게는 하나님의 섭리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비록 야곱 자신에게는 레아 가 원했던 아내가 아니었고 그 결혼은 속은 결혼이었지만, 결국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서 우리 구주의 조상이 나게 하시는 놀라운 섭리를 이루어가 시는 것도 우리가 후에는 주목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내용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누구나 불행의 요소는 다 있습니다. 저 사람은 불행이 없을거야 라고 여겨지는 사람일지라도 그 렇게 판단할 문제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 행복하지 않은 상태, 더 나아가서 너무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지점에 인생이 처해있을 때 이 불행도 전능하시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 획 안에 있고 그분의 손안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 불행의 거울은 끊임없이 자기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에게 자 기를 보게 만들어줍니다. 속이는 자 야곱을 속인 삼촌 라반은 바로 야곱 이 자기를 발견하게 하는 거울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함께 했지 만 사랑을 충분히 줄 수 없었던 아내 레아를 통해서도 야곱은 평생 자기 의 모습을 보아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불행이라는 환경 뿐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에서 지나온 모든 불행의 터널 속에서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거기에서 자기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왜 이런 거울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주시는 것일까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이 되기까지 는 그 예비하신 복을 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보아야만, 그것을 인정해야만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야곱 안에 우리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을 추적하시고 그를 이끄셔서 그에게 계속해서 거울을 가져다 대 주시듯이,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자기의 진정한 모습을 보고 그 모 습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 수 없으십니다.
 창 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 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여쭈어보고 싶은 질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은 이 약속을 지금 지키고 계시는 것입니까? 이 사기 결혼에 속고 만 야곱 의 인생의 불행은 하나님이 함께 있어 주신 결과란 말입니까? 네가 어디 로 가든지 너를 지키시겠다고 약속하신 결과가 고작 이것입니까?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대답은 여기 있습니다. 애 3:31~33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니라 주께서 인 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야곱은 그의 인생에서 하나님의 대답을 깨닫게 될 날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소망이 있는 것은 우리가 잘 할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 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견디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함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우리 삶속에서 나를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가 라반이고 레아일 수 있습니다. 그가 싫어지고 분노하게 한다면 그를 통해서 나를 보게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살았기 때문 에 그를 통해서 나를 보게하려는 뜻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바르게 살아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내가 라반이고 레아일 수 있다면 그는 야곱일 수 있습니다. 내가 라반이든 레아이든, 혹은 야곱이든 누군가의 삶을 통해 반 면교사 삼아야 이전과 다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나의 라반과 레아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합니다. 말씀속에서 나의 실체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속에서 나의 야곱됨을 보아 야 합니다. 성경속에 들어있는 인물과 사건을 통해서 나를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날마다 대면하고 묵상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를 대면하고 나를 바르게 보지 않으면 하나님의 섭리를 내 삶속에 임하 게 하는시간을 유보시킬 뿐입니다. 야곱을 통해서 불행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하나님의 때에 이루심을 보았다면 그때부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의미에서 본문이 주는 믿음의 정의가 있습니다. 믿음이란? 불행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나를 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 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순절에 우리의 기도제목이 될 수 있 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