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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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야곱의 생애(6) 절뚝거리는 승리자 - 창32;22-32
- 느헤미야강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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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야곱의 생애에서 28장의 벧엘 사건과 함께 가장 잘 알려진 야곱이 천사와 씨름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 분수령이 되 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서 빚어가시는 방법에 대한 매우 중요 한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1. 야곱은 하나님께서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의 발 걸음을 옮겼습니다(31:3). 이전에도 지키시고 앞으로도 지켜주실 것이라 는 확신을 주시고자 하나님의 사자들 군대를 보내주셨습니다. 그곳을 마 하나임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여 살아가고 하나님의 돌보심의 약속을 받았으면 아무 문제가 일어 나지 않아야 할 것 같은데 상황은 더 악화되고 고난이 심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비록 20년이 지났지만 에서와 대면해야 하는 야곱은 불안한 마음을 달래 기 위해서 먼저 사신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사신들이 야곱에게 가져온 소 식은 에서가 400명을 데리고 야곱을 만나러 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심히 두려워하고 답답해 했습니다(7). 하나님께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듣고 순종하여 귀향을 결정하였습 니다. 외삼촌 라반과의 위기도 잘 넘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앞에는 400명의 군대를 거느린 에서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순 종함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순종 이후에 펼쳐지는 시험의 상황은 마치 외면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나 의 반대편에 서계신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이것이 야곱이 직면한 시험 이었으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성도에게 주시는 시험이기도 합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기도하지 않았던 야곱이 기도하기 위해서 무릎을 꿇 습니다(9-12).
야곱의 기도에서 발견하게 되는 중요한 원리들이 있습니다.
첫째, 9절, 야곱은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라고 부릅니다. 야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웠고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쳐주실 때, 부모를 통한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신앙이 전수되고 가르쳐지는 주된 수단과 환 경은 목사와 교회가 아니라 부모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9절, 야곱은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라고 부릅니다. 야곱은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웠고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신앙을 가르쳐주실 때, 부모를 통한 방식을 택하셨습니다. 신앙이 전수되고 가르쳐지는 주된 수단과 환 경은 목사와 교회가 아니라 부모와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을 받을 만큼 자신이 합당하지 못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0절). 야곱이 20년동안에 배운것입니다.
셋째, 야곱은 자신을 형의 손에서 건져주시기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 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9절, 하나님께서 제게 고향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 셨습니까? 12절, 벧엘에서 함께 하시겠다 지켜주시겠다고 하지 않았습니 까?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기도합니다.
13절을 보면 야곱은 사신들의 이야기를 듣고서 밤을 지내면서 기도를 했 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했고 눈 뜨자마자 무섭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기도와 삶이 얼 마든지 따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야곱이 보여줍니다. 우리 자신도 이것 을 인정하지 않으면 심각한 영적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날이 밝자, 야곱은 형 에서를 위해서 예물을 골라내 보냅니다. 에서의 마 음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습니다(20). 야곱은 이렇게 인간적인 계획속 에 들어감으로써 실제로는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 여줍니다. 야곱은 에서에게 보내는 예물을 먼저 보내고 나서 밤에 일어나 서 두 아내와 두 여종 그리고 열한 아들로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합니다. 야곱은 가족과 소유를 다 보내고 홀로 남습니다. 아버지 집을 떠나 밧단 아람으로 떠났던 때와 같이 이제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2. 야곱의 기도와 삶이 달라졌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끝나지 않습니다. 아직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때는 여전히 밤입니다 (22).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24). 야곱은 더 이상 남편으로서, 아버지로 서, 또는 이삭에게는 거짓된 에서로서 남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이 제 홀로 남아있는 그는 그냥 야곱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분명하게 만나시려고 하실 때에는 모든 관 계, 모든 소유로부터 우리를 떼어놓으시고 혼자 있게 만드십니다. 모든 것 들과 결부되어 있는 나가 아니라 그냥 홀로 있는 나 자신이 되게 하십니 다. 이것이 은혜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준비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우리의 삶의 모습이 지나칠 정도로 고독한 시간과 장소를 가지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모여있다고 고독하지 않은 것이 아 닙니다. 함께 있어도 고독한데 도무지 고독한 시간과 장소를 가지지 못하 기에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는 기회도 가지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 러기에 세상에서는 분주한데 무력한 그리스도인일 수 밖에 없습니다.
24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목할 것이 있는데, 씨름을 거는 자는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 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야곱과 씨름하셨 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밤중에 시작된 이 씨름이 다 끝났을 때는 해가 돋았고(31) 날이 새도록 씨름하였다고 했으므로(24) 적어도 동트기 전의 새벽녁까지는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어떤 씨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본문을 읽으면 서 두 가지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첫째, 야곱은 자기의 모든 힘을 다 해서 이 씨름을 이기려고 했고, 씨름군 은 야곱을 이기기 힘들다고 느끼고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러자 야 곱은 씨름하는 모든 힘을 잃었습니다.
두 번째, 야곱은 처음에는 자기 힘으로 씨름을 했습니다. 하지만 환도뼈가 위골된 후에는 오직 축복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붙잡았습니다. 무력하 고 절름발이가 되어서 그는 절망적으로 그분을 붙잡았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씨름이 아니요 간절함이며 처절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더 이상 육신의 힘으로 씨름하지 않고 간절히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게 만들 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자기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 러나 하나님의 잔인한 자비는 우리의 환도뼈를 치십니다. 그리고 내가 얼 마나 별볼 일 없고 무력한 존재인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알게 하 시고~! 더 이상 내 힘으로 하는 씨름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을 놓지 않고 그 은혜와 축복을 간절히 구하게 만드십니다.
기도는 내 힘으로, 이를 악물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열 심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 되기 전까지 했던 씨름입니다. 그런 기도, 그런 신앙은 정말 꺾기가 어렵 습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힘과 자기 열심과 자기에게 있는 특별한 무엇으 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붙잡는것입니다. 처음 부터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것이 쉽지 않으나 하나님은 야곱이 결국에는 그랬듯이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배워가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는 내 힘으로, 이를 악물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열 심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 되기 전까지 했던 씨름입니다. 그런 기도, 그런 신앙은 정말 꺾기가 어렵 습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힘과 자기 열심과 자기에게 있는 특별한 무엇으 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 내려놓고 하나님만을 붙잡는것입니다. 처음 부터 하나님의 힘으로 하는것이 쉽지 않으나 하나님은 야곱이 결국에는 그랬듯이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을 배워가기를 원하십니다.
환도뼈를 친 씨름군은 날이 새려 하니 나를 놓으라고 말하지만 야곱은 놓지 않습니다. 야곱은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내가 놓아줄 수 없다고 말 합니다. 씨름군은 묻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것은 야곱의 정체성, 지금까지 야곱이 짊어지고 살아왔던 야곱의 문제의 핵심을 다루십니다. 야곱은 이제 자기의 정체성을 고백해야 합니다. 야곱은 이제 말합니다.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야곱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 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자격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진정한 자신의 모습으로 될 때 까지는 복을 주시 않습니 다. 야곱이 “내 이름은 야곱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기 까지는 무려 20 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씨름군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줍니다. 이스라엘의 이름의 뜻 은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나님이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많은 사 람들과 경쟁을 해왔고 또 싸워서 이겨왔습니다. 형 에서를 속여서 장자권 을 빼앗았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속이는 자 라반 도 결국엔 이겼습니다. 그런데 다 이겼는데 정작 이 순간에는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습니다.
형과 아버지를 이기고 얻은 것은 20년의 객지에서의 고생이었습니다. 라반을 이기고 얻은 것이 가족들과 가축들과 재산이라고 하지만, 결코 그 것은 자기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이제 무엇이 참으로 이기는 것이고, 무엇이 지는 것인지를 배웁니다. 환도뼈가 위골된 절뚝거리는 야곱. 야곱은 육신의 힘으로가 아니라 기도 로 이 씨름을 이깁니다. 야곱은 자기의 힘이 다했을 때도 이 씨름을 끝내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힘으로 이기려 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전심으 로 붙잡았습니다. 결국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하는 모습입니다.
3. 이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을 생각합니다.
첫째, 오늘 이 씨름을 하기 전의 야곱의 삶은 기도하지 않고 사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과 그 무력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열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그들의 열심은 하나님의 은혜와 참된 축복을 누리는 삶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면 야곱을 이 씨름의 현장으로 이끌어내신 분이 바 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을 발 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하십니다. 우리가 참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야곱을 얍복나루로 인도하셨 듯이 우리를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여러분은 자기 힘으로 씨름을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기도로 씨름을 하고 계십니까? 정말 슬픈 것은 고통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 기 힘을 내려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멋진 승리자, 조금도 상처가 없는 승리자가 아니라, 절뚝거리는 승리자가 되는 것이 성도들인 우리의 영광입니다. 상처투성이의 승리자는 사람의 관점으로는 진 것같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이긴 자입니다.
셋째, 내가 씨름하고 있는 대상이 하나님이신데 혹시 내 힘과 열심으로 꺽이지 않으려고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넷째, 그 씨름군은 떠나고 야곱은 그곳 이름을 하나님의 얼굴을 뜻하는 브니엘이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성경은 해가 돋았다 고 의미있는 묘사를 했습니다. 절뚝거리는 승리자인 야곱은 이제 진정한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인생의 이야 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씨름이 여러분의 씨름이 되시길 바라고, 여러분이 아무 상처없는 승리 자가 아니라 절뚝거리는 승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에서 비로소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헤세드가 야곱을 이 자리까지 데리고 왔듯 이 오늘 우리의 인생도 그 자리로 데리고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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