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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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야곱의 생애(7) 내 안에 있는 두 사람: 야곱과 이스라엘 - 창33;1-17

  • 느헤미야강
  •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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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을 걸어오신 하나님은 야곱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리고는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아 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사래가 사라로 그 이름이 바뀌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브라함이다 라고 하고는 이후에 아브람이라는 옛 이름은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분명히 하나님은 이제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부를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여전히 야곱이란 이름이 쓰이 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실 창세기 33장부터 50장까지 이스라엘이 란 이름보다 야곱이란 이름이 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에서 우리가 주로 살필 이야기입니다.

1.  동이 터오고 씨름을 끝낸 야곱은 다리를 절면서 앞으로 진행합니다. 멀리 서 형 에서와 400명의 무리가 보입니다. 드디어 형 에서와의 거리는 가 까워지자 야곱은 7번을 땅에 굽히며 나아갔습니다. 이후에 벌어진 일을 성경은 4절에서 여러 동사를 통해서 극적으로 설명해줍니다. 에서는 절면 서 다가오는 동생 야곱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그를 끌어안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함께 사는 동안에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목을 어긋맞추고 동생과 입을 맞춥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목을 놓아 웁 니다. 성경은 이 구절을 통해서 에서에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줍 니다. 에서가 야곱을 죽이기고 결심했던 적대감은 변하여 용서의 감정으 로 바뀌었습니다. 비록 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하나님께 서 에서의 마음에서 담아놓은 은혜를 지금 야곱은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 다. 이것은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주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모든 상 황을 예비해놓으셨는가를 야곱에게 알게 하시는 사건이었습니다. 명령을 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한편, 의문이 드는 것은 굳이 야곱의 환도뼈를 어긋나게 하셔야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밤새 씨름했으니 몰골은 어땠을것이며, 다리는 절 었습니다. 한 발자국 절룩거리며 걷고는 엎드려 절합니다. 이것을 일곱 번 반복합니다. 그것을 본 형 에서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형제애의 마음, 긍휼한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요? 하필이면 내 힘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것을 끊어쓸까? 그것이 20년이상 묵은관계를 끊어내는 도구가 되지는 않았을까요? 평생 두려움과 걱정으 로 사는것보다 끊어진 환도뼈로 회복된 삶을 사는게 은혜입니다.

2.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야곱의 변화입니다. 야곱 은 형과 아버지를 속여서 축복을 가로챈 인물이었습니다. 결과를 성취하 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앞에서 자기 의 이름을 야곱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는 속이는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발견하고 그 부끄러운 모습을 인정했습니다. 야곱은 형에게 나아가면서 땅에 몸을 일곱 번이나 굽혔습니다. 형 에서를 향하여 6번이나 내 주 라고 불렀습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자기가 하 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요 형이 자기를 섬기게 될 것임을 어머니로부터 들어 알고 있었을 야곱. 그것 때문에 에서와 이삭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 채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야곱. 실제로 벧엘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약속받 았고, 20년의 나그네 인생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한 야 곱입니다. 어린 시절에 비하면 훨씬 더 하나님의 분명한 뜻을 알게 된 야 곱이 왜 형 에서에게 나의 주 라고 부르면서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물으신 것은 그의 이름 이었고, 그분 앞에서 자기가 누구인지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발견하셨습니까? 야곱은 자기 이름을 말했습니다. 나는 남의 발 목을 잡는 자입니다, 나는 사기꾼입니다, 나는 내 힘으로 살아가고 살아남 는 자입니다 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지요.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야곱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이름, 자기의 정체를 밝혔을 때, 비로소 그 는 자유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이제 더 이상 야곱은 남들과 경쟁하고 싸우고 다투어서 뭔가를 쟁취해야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이제 명령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명령하신다 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명 령하시고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야곱을 대신해서 싸 우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야곱 자신이 뭔가를 얻기 위해서 남을 넘어뜨 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남의 발꿈치를 잡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자기 의 자존심을 똑바로 세우고 가야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야곱의 변화입니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10). 이것은 결코 아첨이 아니 었습니다. 야곱은 실제로 형의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형 안에서 이루 고 계신 놀라운 은혜를 본 것입니다. 자기가 버둥거리고 자기를 지킴으로 써 자기가 존귀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명예와 존귀는 하나님이 주시 는 선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3. 그러나 우리는 본문 안에서 미묘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은 사람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옛 야곱의 모습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야곱이 형 에서에게 예물을 받을 것을 강 권하는 장면입니다. 에서는 이미 앞서 보내준 것들이 모두 형에게 주는 예물이라는 것을 야곱으로부터 듣고 나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예물을 사양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강권하여 결국 예물을 에서에게 줍니다. 야곱이 강권하여 예물을 받게 한 것은 에서의 용서가 나중에 취소될 수 없도록 완전히 도장을 찍는 상징적 행위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 서 야곱은 에서의 용서에 대한 증거를 요구했다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신뢰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새 사람 이스 라엘 안에 있는 옛 사람 야곱의 증거의 약한 면이라면 우리는 이제 보다 더 강력한 증거를 만나게 됩니다.  동생 야곱으로부터 예물을 받은 에서는 이제 동생을 에스코트하여 함 께 가기를 원합니다(12절). 그러나 야곱은 형과 떨어지기를 바라고, 사정 을 설명한 후, 천천히 형이 있는 곳 세일로 가서 형을 만나겠다고 말합니 다(13~14절).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기의 종들을 좀 남겨두겠다는 제안도 거절합니다. 결국 야곱은 형 에서가 사는 세일 땅으로 가지 않고 반대편을 향하여 가서 숙곳에 정 착을 하고 또 거기서 더 가서 세겜에 완전히 정착을 하게 됩니다. 세겜에 서는 땅을 매입하여 거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야곱은 거기서 상당히 만족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자기를 용서한 형 앞에서 자기의 뜻을 밝 히지 못하고 순간을 거짓말을 함으로써 모면을 하려고 하는 행위는 분명 히 아직도 변화되지 못한 야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또 한 가지 이스라엘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야곱의 모습은 그가 벧엘 로 가지 않았던 것에 있습니다. 야곱이 오래 전 벧엘에서 하나님을 뵈었 을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시오면….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창 28:21~22). 야곱이 이 고백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기억하고 하 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도록 자기에게 영감을 주는 은혜의 장소로 삼겠다 는 의미였을 것입니다(창 35:7).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평안히 고향으 로 돌아오게 하셨지만, 벧엘로 가서 서원을 이행하는 것을 하지 않은 채, 세겜에서 땅을 매입하여 정착하였습니다. 야곱은 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후에 값비싼 댓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4. 본문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관한 매우 중요한 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의 새로운 신분이자 야곱의 앞으로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후에도 계속 야곱과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반복 적으로 등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가르쳐주시지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옛 사람의 모습, 우리의 죄된 본성이 남아서 역사합니다. 야곱은 분명히 변화되었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옛 야곱이 남아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정말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사람이 맞다면, 정말 그가 하나님께 환도뼈를 맞고 그분을 전심으로 붙잡음으로써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낸 사람이 맞다면 어떻게 여전히 야곱적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체험이라고 해도 그것이 우리가 거룩하게 되어져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우리 안에 이루어가는 인생의 과정은 한 순간에 이루 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길고 긴 성화의 과정을 대신해주는 체험은 없습니다. 체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확신하 고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를 자극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런 점에 서 신앙의 체험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되며, 여러분의 삶 속 에서 이런 은혜의 체험을 구하셔야 하는 것은 마땅한 성도의 도리인 것입 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깊은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성의 요소가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것을 보게 하시는 것은 우리를 더 낮추시고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라고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화해입니다. 20년 묵은 에서의 적대감을 무엇이 에서로 하여금 동생 야곱을 용서하게 만들었을까요? 성경은 20년 동안에 에서에게 있었던 사건들을 자세히 기록해 주지 않습니다. 에서가 동생 야곱을 향하여 적대감을 풀고 용서하는 이 감격적인 장면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위해서 약속을 지키시고 에서 안에서 역사하여 주신 은혜로 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까닭입니다. 그 안에는 에서의 적대 감을 용서의 마음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관계였지만, 야곱이 하나님 과 씨름할 때 형 에서의 문제를 놓고 기도했을테지만 하나님은 그가 구했 을지라도 그가 상상하는 최고의 결과 이상을 허락하여 주신 셈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이 에서와의 관계를 놓고 끝까지 하나님께 매달렸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적잖은 위로와 소망을 전해주는 말씀입니다. 야곱이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신앙은 한 순간의 체험이 아니라 날마다 매 순간 마다 자기를 쳐서 복 종시키는 삶이라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한 체험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모든 순간에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가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께 피할 때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 31:19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우리는 인생의 모든 순간 순간 마다 그 은혜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