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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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새;야곱의 생애(8) 인생 먹구름이 낄때 - 창33;18-34;31
- 느헤미야강
- 201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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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장은 하나님 이란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란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 다. 우리 인생에도 그렇습니다.“하나님은 그 때 어디 계셨습니까?”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마는, 하나님은 그 때에도 여러분의 고통 속에서 함께 고통하고 계셨다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힘든 순간에도 여러분에게 그분 의 헤세드로 찾아와 계셨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삶의 어두운 시절이 보여 주는 메시지입니다.
1. 야곱은 벧엘이 아니라 세겜이 정착했습니다. 장막을 치고 거기서 그곳 의 유지인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땅을 매입하였습니다(33;18-20). 거기서 정착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 그는 서원한 벧엘로 가지도 않았고, 형과 약속한 세일로도 가지 않았으며 물론 아버지 이삭이 아직 살아있는 헤브론으로도 갔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아마도 아버지와는 감정 적으로 늘 거리가 있었던 야곱에게 있어서, 중재자인 어머니 없이 아버지 이삭을 만나볼 용기가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야곱이 세겜에서 얼마나 많은 세월을 보냈는가는 성경에서 정확하게 기록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을 거기서 보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종종 우리의 신앙을 반영합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장소를 결정할 때, 여러분에게 중요한 기준은 무엇입니 까? 신앙이나 사명? 아니면 경제적 이유와 자녀들의 학군의 문제입니까? 우리가 사는 장소를 결정하는 것을 통해서 저 사람에게는 신앙이 중요하 구나 라고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면 복된 일입니다. 그 이유가 어느 것이었던지 야곱은 결코 신앙적이고 영적인 이유에서 세 겜에 정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이 덜 영적인 동기에서 세겜에 정착했을 때, 그의 자녀들은 덜 신앙적인 태도로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 니다. 본문은 잘못된 정착이 나은 잘못된 결과요, 댓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이 거처를 정하실 때에는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십시오. 나의 자녀 들이 영적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곳인가? 주님이 내가 여기 있기를 원하시는가? 이곳이 내가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는 곳인가? 그런면에서 세겜은 야곱의 딸 디나의 경우에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기억할 것은 우리의 정체성은 나그네의 정체성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사는 것은 나그네로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 영원한 처소는 여기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와서도 여전히 장 막을 짓고 살았습니다. 자기가 나그네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시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양 식과 태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살아가며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어떤 점에서 증거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십시오. 교회 다닌다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이 세상이 전부라 고 믿고 악착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른 점이 과연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정체성은 나그네의 정체성이며, 그 정체성은 말에 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의 구석 구석, 생활양식과 삶의 태도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성도가, 자기 백성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계속해서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강제력을 동원해서 우리를 막으시지도 않으십 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자유의지를 통하여 일어나는 일들 속에서도 역 사하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배우게 하셔서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싶은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 보는 야곱 가정의 비극이 일어난 것은 그런 견지에서 이해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분명히 할 것은, 믿는 자의 가정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의 발단은 야곱의 딸 디나가 동네에서 추장인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디나는 그 땅의 여자들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추장인 세겜의 눈에 들었고 세겜은 힘으로 디나를 강간하였습니다. 아무도 원치않고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하나님의 사람 야곱의 집안에 벌어졌습니다. 이런 원치 않는 일들은 성도 가정을 언제나 피해서 불신자 의 가정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야곱은 전날까지만 해도 추장 세겜에 대해서나 그곳의 사람들에 대해서 자기가 사는 세겜이라는 곳에 사는 좋은 이웃들이라고 생각을 하고 살았 을 것입니다. 그런데 딸이 강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 가해자는 바 로 추장인 세겜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이런 식으로 이웃을 좋은 분들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수 있습니 다. 물론 좋은 이웃들일 수 있겠으나, 그들이 분명하게 하나님을 두려워하 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너무나 안심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어떤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있으며, 장성한 자 녀들도 어떤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가를 주목해서 보십시오. 야곱이 세겜에 정착한 것은 경제적 이유나 학군의 이유로 볼 때는 어 떠했는지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세겜은 디나를 강간하고 나서 디나를 버리지 않고 그 녀를 얻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세겜은 아버지 하몰과 함께 야곱의 집으 로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한 마디도 그들이 야곱과 그 아들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디나를 얻기 위 한 협상만을 원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겜에서 소수자이며, 약자인 야 곱의 집안에 대한 강자의 처신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슬픈 것은 바로 야곱의 태도입니다. 야곱은 디나 의 강간 소식을 듣습니다. 그러나 아무 행동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들 들이 들에서 돌아오기까지 그냥 잠잠하였다고 했습니다(5절). 세겜에 거 하는 10여년의 세월은 야곱에게 있어서 영적 암흑기요, 하나님의 침묵기 였으며, 영혼의 깊고도 어두운 밤이었던 같습니다. 야곱은 뒤로 물러섰고 야곱을 대신하여 들에서 돌아온 레아의 오빠들이 협상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아버지를 대신하여 협상테이블에 앉은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은 시므온과 레위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어떤 댓 가든지 치루겠다고 하는 세겜과 하몰에게 속여서 말했습니다. “너희 중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주겠다”(34:14~17). 세겜과 하몰 이 볼 때, 이것은 잃을 것이 없는 협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야곱의 집안이 그들 중에 거하고 섞이다 보면 야곱의 재산도 다 그들의 것이 되 고 말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34:23). 반면에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를 다 하게 한 후에 몰살시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 시로 주신 것을 더러운 방식으로 팔아넘겼습니다. 속임수에 따라온 것은 잔인한 학살극이었고 노략질이었습니다.
본문에 서 보여주는 무서운 이야기는 범죄하는 것이 결코 이 세상 사람들만의 이 야기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야곱의 두 아들은 디나의 일을 갚기 위해서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를 행하고 삼일이 되어 고통이 심할 때에 세겜을 습 격하여 칼로 모든 남자를 다 죽이는 대학살극을 저질렀습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고, 다른 모든 형제들은 그 죽음의 도시로 달려 가서 탐욕스럽게 노략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의 죄악은 세겜 보다도 더 큰 악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 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 사실을 조금도 감하지 않고 사실대로 써내려갔다 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가 타락하게 될 때 세상과 다를 바 없으며 세상보다도 더 무서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3. 본문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야곱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말을 합니다. 자기의 집안에 벌어진 상상 조차 하지 못할 일들을 대면하 면서 야곱은 두려웠습니다. 창 34:30 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 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기껏 야곱이 꺼낸 말은 자식들의 범죄에 대한 도덕적이고 영적인 지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연민에 깊이 빠져서 앞으로의 삶을 걱정하는 지극히 자기 본위적인 자기 중심성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말입니다.
모든 것이 나와 나의 안전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나는, 나를, 나를, 그리고 나와 내 집이…. 나의 연속입니다. 잘 좀 살아보려고 했더니 너희가 다 망쳐놓았어 하는 비난입니다.
4. 성도의 인생에도 먹구름이 드리울 때가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분명 한 체험 그리고 오랜 세월을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어도 인생에 먹구 름이 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치시는 벌이 아닙 니다. 오히려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향해서 내 품으로 돌 아오라고 불러주시는 은혜의 노래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심각하게 다시 생각해보게 하시는 기회입니다.
저는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 교훈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야곱은 인간적인 생각에서 안정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동안의 타향살이는 늘 불안의 연속이었고 자신이 과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인지도 불확실하였습니다. 이런 불안과 불확실성은 그 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으 로 돌아와서 단을 쌓은 후에는 자기의 생각과 판단을 가지고 살아도 될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안정을 추구하여 세겜에 정착하기로 결정했습니 다. 하나님께 이 일을 여쭈어본 것 같지 않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안정의 시도는 비참한 영적 실패를 초래했습니다. 영적인 실패만이 아니라 육신적으로 가정적으로도 비참한 결과를 맛보아야 했습 니다. 그렇지만, 야곱의 이야기가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일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난다고 하여도,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사십시오. 그 때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언제나 이런 영적 실패는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가 는 디딤돌이 되곤 하는 것입니다.
둘째, 비록 34장이 하나님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야곱의 삶을 찾아오셨던 은혜의 하나님은 결코 야곱을 떠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우 리에게도 그렇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셨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고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를 지키시는 헤세드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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