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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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1장 - 오늘을 사는 소망
- john
-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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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51장)에는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다.
바벨론은 여러 민족들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교만하여 마치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재패한양 우쭐거렸다.
오늘 본문은 바벨론에 대한 묘사와 또 그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
그러나 결국 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다.
먼저 7절과 13절에는 바벨론에 대한 묘사가 나온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손에 잡혀서 온 세계를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고 했고,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다고 했는데,
바벨론이 하나님께서 여러 민족을 심판하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는 사실과
또한 그들의 부요함에 대해 이야기한 말씀이다.
실제로 바벨론은 주변이 물로 둘러싸여 있어서 천혜의 요새와도 같았다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민족의 침입을 쉽게 격퇴시키며,
자연히 물질의 부요함도 넘쳐났다고 한다. 그러니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겠나?
어떻게 보면 교만하기가 쉬운 환경에 있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그들은 강한 군사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제국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교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
계속되는 말씀에는 이러한 바벨론이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본문 20절에 바벨론을 가리켜 너는 나의 철퇴라고 하셨는데,
철퇴는 고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무기로,
끝이 둥글며 뾰족한 쇠가 돌기처럼 솟아있는 무시무시한 병기였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 죄악 된 여러 민족들을 무시무시하게 심판하셨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들이 했던 그대로 그들에게 갚으실 것이라는 심판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비록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이었지만,
하나님의 도구였다고 해서 그들이 결코 의로웠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왕 되심을 깨닫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고치시려고 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심판을 받았다. 멸망했다.
이 바벨론이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 이어지는 말씀에서 계속 묘사된다.
25절 이하에 바벨론은 멸망의 산으로 영원히 황무지가 될 것이며,
37절에 돌무더기가 되어 혐오의 대상과 탄식거리가 된다고 했고,
43절에는 그 성읍이 황폐하여 마른 땅과 사막과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54절 이하에도 계속해서 그 땅이 황폐할 것이라는 말씀이 선포되고 있다.
그리고 63절에는 예레미야가 스라야에게 바벨론에 대한 이 말씀을 읽고,
이 말씀이 적힌 책에 돌을 매어 강 속에 던지라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돌이 달린 책이 그 무게로 인해 강 속 깊은 곳으로 사라지듯,
바벨론이 역사의 뒤 안 길로 사라질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행위였다.
제 아무리 강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한들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던 바벨론도
결국은 이렇게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말씀이 선포될 당시까지만 해도 바벨론은 여전히 중동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는 초강대국이었다.
바벨론은 많은 민족들이 우러러보는 민족이었다.
그런데 반면에 그들에게 멸망하는 유다는 어떠한 형편이었나?
바벨론의 세력 앞에서 풍전등화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많은 민족들로부터 손가락질 받고 비웃음거리가 됐던 민족이었다.
누가 봐도 바벨론의 위세나, 유다의 위기는 계속될 것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며,
그가 유다를 위하여 보복하시고, 또 유다를 회복시키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을 이루셨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상황이나 환경, 또 조건은
결코 우리가 기대하거나 의지할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지금 현재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어떤 조건을 가졌는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그것에 따라 기대가 달라지고 평가가 달라진다.
하지만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조건보다,
그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그 중심에 누가 계신지를 중요하게 보신다.
바벨론도 겉보기에는 강하고 화려했으며 그렇기에 많은 이들에게 칭찬과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
반면에 유다는 멸망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여러 민족들로 하여금 비웃음거리가 됐다.
바벨론은 이러한 외적인 조건을 믿고 교만했지만,
유다의 예레미야와 같은 신앙인은 오늘의 이 처지를 회개하며 목 놓아 울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이나 환경이 아닌, 그 너머의 것을 보신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있는가, 여호와 하나님께 속해있는가?
우리가 하나님께 속해있다면 지금 어떠한 상황에 처했든지, 또 어떠한 모습이든지
혹은 우리에 가진 것이나 내세울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가장 큰 영광과 회복을 주시는 줄 믿는다.
이러한 사실을 믿음으로 취하면서, 더 이상 인간의 시각, 세상의 관점으로 인해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오늘하루도 소망 가운데 살아가자.
이것이 우리가 오늘을 살 수 있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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