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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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3장 - 말씀이 나를 판단하는가, 내가 말씀을 판단하는가

  • 느헤미야강
  • 2018-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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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 그다랴 암살 이후, 남은 유다인들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된 요하난과 일행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전해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 니다. 
들의 말은 예레미야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렇게 말 씀하신 적이 없다는 것 이었습니다(2). 
그들의 판단은 매우 인간적입니다. 
바룩(예레미야의 비서)이 예레미야를 사주하여 그렇게 말했다고 그들은 지어서 말합니다(3). 
그들은 결국 하나 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원래 자기들의 계획을 따라 
왕의 딸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과 예레미야, 바룩까지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 애굽의 국경 도시 다바네스에 이르게 됩니다.
 
그들이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저버렸지만, 
하나님은 애굽에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그곳 다바네스까지 느부갓네살이 쫓아올 것이며 
그 칼에 죽게 될 것이고 예루 살렘에 그렇게 했듯이 
그 성을 불사르게 될 것이라는 경고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다바네스 바로의 집 어귀에서 상징적으로 큰 돌을 옮겨 진흙 아래 감추면서 
바로 이 자리에 느부갓네살의 보좌가 서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하난 일행은 느부갓네살의 칼을 피하려고 애굽으로 도망했지만, 
결국 그들은 도망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느부 갓네살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도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판단을 받고 지시를 받기 보다 는 
자기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심 각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교만이라고 부릅니다. 
즉,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의 위에 두는 모든 태도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대로입니다.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아도 알지 못 하는 것입니다(사6:9). 
무지해서라기 보다, 교만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2절은 앞서 42:1의 표현과는 달리, 
동일한 그 사람들은 ‘모든 오만한 자’라고 바꾸어 표현합니다. 

그들에게는 자기들의 생각과 맞을 때에만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로운 말씀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앞에서 했던 말만 보면, 
보기 드문 믿음의 사람들로 보입니다(42:5~6).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사람 들에게 
이 본문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서 있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당신 자신이 날마다 판단 을 받고 있으며 
그것을 기꺼이 ‘아멘’으로 수용하고 순종하는가?, 
아니 면 나의 생각과 다르거나 내 마음에 거슬린다고 여겨지면 
지체 없이 그 말씀을 내 자신이 판단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하거나 
자신을 보호하거나 감 추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하난과 아사랴 그리고 모든 교만한 자들이 그렇게 했듯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도망가며 한 순간을 넘긴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을 완전히 벗어나서 도망갈 길은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그 말씀 앞에,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 벗은 자같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히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