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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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4장 - 예레미야의 기도에서 배우다
- 느헤미야강
- 201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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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시대에 하나님이 범죄한 나라를 심판하시는 방법은 대체로 세 가지 였습니다.
12절 후반에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고 기록 되었습니다.
칼은 전쟁이고 기근은 가뭄이며 염병은 질병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하나님이 가뭄으로 유다를 치셨습니다.
1절에 “가뭄 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가뭄이 오게 되자 세 가지가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3절에 물, 4절에 비, 5,6절에 풀이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든 들짐승들이든 마시고 먹을 것 을 구하지 못하여
심한 비탄과 재앙에 빠지게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는 기도조차 도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세 번에 걸친 기 도와 하나님의 답변으로
14장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런 절망의 때에 예레미야는 회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 험하고자 합니다.
예레미야 14장 7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 에게 대하여 증거할찌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 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의 회개 기도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간단하고 단 순한 기도이되
절망과 고통과 비탄을 벗어날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를 포 함하고 있습니다.
1.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하라
죄를 그대로 가지고는 소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고백해야 됩니다.
예레미야의 고백기도를 보게 되면 죄를 고백하되
자신을 포함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도 범죄한 회중의 일부로 포함시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역사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주의 종들의 기도는 대부분 그렇습니다.
“나는 빼고”
“나는 아니라”가 아닌
“나를 포함하여 우리 백성이 죄를 지었습니다.”라는 고백입니다.
느헤미야 1장 6절로 7절에서 느헤미야는
“나와 나의 아비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라고 기도했고,
다니엘 9:20절에서도 다니엘은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라며
자기의 죄를 포함하여 고백했습 니다.
에스라 9장 6절에서도 학사 에스라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 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라고 기도했습니다.
에스라는 유다백성들의 죄악을 고백할 때에
자신의 죄도 포함하여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죄악을 지적하는 것을 많이 듣습니다.
목회자들의 죄악이 크다고 합니다.
특별히 큰 교회 목사님들의 죄가 크다는 소리를 많이 듣 습니다.
그런데 그런 죄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나는 아니라”하고 자신을 상관없다 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일반적인 죄 와 우리 각자의 죄는 구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몸이요 우리 각자는 몸의 지체입니다.
이가 아프면 온 몸이 다 아 픈 것입니다.
손가락이 아프면 온 몸이 다 아픕니다.
지체가 하나 아픈 것은 온 몸이 아픈 것입니다.
그리고 온 몸이 범죄한 것은 지체가 곧 범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고백할 때에
“아 버지 이 땅의 교회가 회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면서
‘나는 아니라’하 지 마시고 언제나 자신도 포함시켜 죄를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 나님의 구원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와 느헤미야와 다니엘 그리고 에스라도 그랬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를 보게 되면 우리는 범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7절 후반에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라고 기록되었 습니다.
영어성경을 보게 되면 “our backsliding is many”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배역이란 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으로 앞으로 나 아가지 아니하고 뒤로 미끄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 아니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죄와 가까워지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성경에는 ‘배교’라고 번역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뒤로 미끄러지면 타락하게 되고
결국은 배교의 자리에 까지 가는 것입니 다.
타락과 미끄러짐과 배교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역이 불신자가 아니라 성도의 죄라는 것입니다.
이 배역의 특징은 점점 증가한다는데 있습니다.
“우리의 배역이 많음이니 이다”는 말씀은 배역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조금 멀리하 면 그 다음에는 더 멀리하게 되고
그 다음에는 더더욱 멀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예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증가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역은 반드시 체크되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다시 돌이켜 하나님께 가 까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디까지 멀어지셨는지 체 크하시고
브레이크를 밟고 돌이켜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게 되시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9세기 중반에 미국은 남북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군도 북군도 모 두 하나님은 내편이라고 했습니다.
같은 하나님편인 군인들이 싸우고 있 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예를 해방시킨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나는 하 나님이 내편이라고 자랑하지 않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겸손 히 기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내편이십니다.”라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겠습니다.”라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주신다는 것입 니다.
우리가 인생에 성공하는 최고의 비결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 님 편에 서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 면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역하고 멀리하면 하나님이 우리 반대편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나 하나님과 한 편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한 편이 되면 전쟁도 물 러가고 기근도 물러가며
염병도 소리 없이 떠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가 삶을 살다가 고통과 재앙이 오게 되면
먼저 자신을 포함하여 회개기도 를 하시되 하나님을 멀리했던 것을 회개하시고
다시 하나님께 가까이 나 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절망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하라
절망과 좌절에서 벗어나려면 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내게 있 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자 해야 합니다.
본문 7절 전반에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찌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라고 기록되었고,
9절 후반에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 옵소서”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인생의 코너에 몰릴 수가 있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심판이라 한다면
“아버지 내가 지은 죄를 생각하면
내가 어떤 벌을 받아도 하나님이 잘 하시는 것입니다.”라고 기도해야 됩 니다.
먼저 이렇게 기도하시고
“그러나 내게는 그래도 주의 이름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그래도 하나님 자녀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름이 내게 있지 않습니까?
주 예수의 이름이 내게 있지 않습니까?
성령의 이름이 내게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망하고 죽으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 습니까?”
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걸고 넘어지라는 것입 니다.
예레미야 14장은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예레미야 의 대화로 구성되어있습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사이에서 구하는 예레미야 의 간구에는
단순한 감정적인 호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성품에 근거하여,
진노를 거두어주시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레미야의 대화는 중보자가
무엇에 근거하여,
어떻게 기도해야하는 지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어떤 존재이신지,
하나님의 성품은 어떠하신지
하나님이 백성과 맺은 영원불변한 언약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그것에 근거하여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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