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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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7장 - 시편1편 리바이벌
- 느헤미야강
- 20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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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시편 1편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복있는 사람과 악인의 이야 기인데 예레미야 17장은
저주받은 자가 먼저 나오고 복 받은 자가 뒤를 이어 나오고 있습니다.
순서가 다를 뿐이지 내용은 동일합니다.
먼저 저주받은 자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본문 5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 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 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 힘을 삼고”는 똑같은 말의 반복입니다.
사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인데 그 러면 그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나
여호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 지 않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신앙의 대상이 되고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이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이 만든 지혜, 철 학, 종교, 또 자기 자신의 능력, 이런 것들을 의지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 지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라는 분류에 속하게 됩니다.
이 저주받은 사람에 대해 6절은 대단히 무서운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저주받은 자는 사막에 거하는 떨기나무와 같다고 그랬습니다.
6절 중반에서는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라고
이 떨기나무 인생의 슬픈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현세에도 소망이 없고 내세에도 좋 은 것이 오는 것을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지나가면 좋은 일도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세월 이 약이겠지요’라는 노래를 하지만 저주 받은 자는 세월이 약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세월도 아무 약효가 없고 세월이 지나가도 좋은 것을 볼 수 없다는
즉, 아무소용 없다는 얘기입니다.
11절에도 저주 받은 인생에 대한 또 다른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 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11절)
저주 받은 인생은 자고새 인생이라는 말입니다.
자고새는 자기가 알을 낳 지 않았을 때에도 남의 둥지에 가서 알을 훔쳐다가
알을 낳은 것처럼 품 고 있습니다.
저주받은 사람은 이처럼 포장(위장)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입 니다.
많은 재물을 깔고 앉아
“내가 왜 저주받은 인생이냐?
내가 이처럼 돈도 많고 좋은 차타고 다니고 출세하고 이름도 날리는데,
내가 깔고 앉 은 게 얼마나 많은데 나를 저주받은 인생이라 하느냐? 합니다.
이것은 불의로 치부한 부를 깔고 앉아 있는 사람은 자고새와 같습니다.
자고새가 남의 새의 알을 갖다 품고 있다가 새가 부화하여 깨어납니다.
그런데 그 새끼를 보니 자기 새끼가 아닙니다.
새끼가 보니 자기 어미도 아닙니다. 생긴 게 다릅니다.
그래서 “여기는 우리 집도 아니고 이 새는 우리 어미도 아니네.”하고 날아가 버립니다.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은 것처럼
저주받은 자가 불의로 치부한 부 를 깔고 있다 할지라도 중년이 되면
다 날아가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는 인생을 가리켜 자고새 인생이라고 합니다.
13절 말씀에는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저주받은 인생의 결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떠나고 버리는 자 들에게 이와 같은 것들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해변의 모래밭에서 모래성도 쌓고 자기 이름을 크게 적어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도가 한번 몰아 쓸고 지나가면
성도 다 쓰러져 버리고 자기 이 름도 다 지워져 버립니다.
저주받은 자의 인생은 그 이름이 신문과 책에 요란하게 등장해도
영원한 세계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이름, 도리어 수치를 당하는 이름이 될 것입니다.
좋은 것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수치가 오는 것을 보 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저주 받은 인생의 결국입니다.
유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택한 백성들이나 하나님을 떠 나 사람을 세상을 의지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복 받은 자일까요?
7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여 호와 하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복 받은 자입니다.
8절에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 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 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복 받은 사람에 대한 아름다운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도 원래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막에서 떨 기나무처럼 태어나 그렇게 떨기나무처럼 자라나고 있던 중
어느 날 하나 님이 은혜를 주시고 그를 뽑아 물가로 옮겨 심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복 있는 사람은 물가에 심기운 나무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가로 옮겨 놓으셨습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께 복 받은 인생은 하나님이 물가로 옮겨놓으신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 뿌리를 물가에 뻗치고 있기 때문에 가뭄이 와도 아무 염 려 없습니다.
또 더위가 와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잎이 언제나 청청하고 열매가 끊이지 않고
사시사철 열매가 달려있는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저주를 받고 복을 받는 기준이 될까요?
예레미야 17장 전반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마음”입니다.
1절에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 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5절 후반에도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 라”고 기록되었고,
9,10절에도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예레미야 17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바로 “마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느 부분에 관심을 갖고 계시느냐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느냐?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느냐?
마음이 여호와께 가까워졌느냐?
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 세상의 어떤 것보 다도 가장 거짓된 것이요
가장 속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합니다.
하나님을 마귀라 하고 마귀를 하나님이라 합니다.
진리를 거짓이라 하고 거짓을 진리라 합니다.
전쟁을 평화라 하고 평화를 전쟁이라 합니다.
저주를 축복이라 하고 축복을 저주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이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 어서도 안되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스스로 마 음의 부패함을 알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을 살피시고 우리 마음에 있는 악과 죄를 드러내는 분이십니다.
시편 44편 21절 후반에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라고 기 록되었고,
139편 1절에도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 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가 없이 이처럼 부패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부패한 마음 을 스스로 감찰하거나
스스로 고치거나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유다 백성을 향한 선언이자 모든 인간을 향한 문제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자연 상태에서는 저주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축복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 간입니다.
저주의 길에서 축복의 길로 돌아서는 것은 마음의 변화에서 비 롯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됩니다.
몸이 여기 앉아 있어도 마음으 로는 바뀌지 않았다면 소용없습니다.
양심의 악을 깨닫고 회개하고 마음 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 하나 님만을 의지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성서적인 구원입니다.
이런 마음의 변 화가 없이는 천국을 볼 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겔36;26)
우리 마음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14절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 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하나님, 내 마음이 부패한 것을 알았으니,
내 마음을 나도 고칠 수 없으 니,
하나님이 나를 고쳐 주소서.”
이것이 바로 14절의 기도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내 마음이 부패했고 내가 스스로 내 마음을 고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내 마음을 고치시는 분이시니 나를 고치소서.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고치시고 바꾸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사람의 신뢰, 사람의 사상, 사람의 철학, 사람자체 따위를 신뢰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여호와를 신뢰하여 복 받는 인생으로 사시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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