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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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19장 - 흰놈의 골짜기, 도벳이 되지 않게 하라

  • 느헤미야강
  •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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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뜨림은 무너뜨림이 목적이 아니라 다시 세우기 위함입니다. 
오늘 나의 삶과 신앙속에서, 가정과 자녀속에서 
무엇인가 막힘이 있고, 답답함이 있 고, 주저앉음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무너뜨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다시 빚으셔서 더 좋은 것으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이 원망이 되고, 두려움이 되지만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제 대로 깨닫게 되면 축복이 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무너지고 깨뜨려져서 다시 세워질 수 있다면 좋은 것입니다.
얼마든지 반복해서 빚고 또 빚어 제대로 된 토기가 될 수 있다 면 
전 계속해서 빚고 또 빚어지는 목사가 되고 싶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최고인줄 알았다가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아니라고 하시면 
그때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 번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깨뜨려진 적이 없다 고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오늘 나는 깨뜨려진 적이 없다고 자랑할 것도 아니고, 
늘 무너지고 답답하게 막혀있다고 실망할 이유가 전혀 없습 니다. 
하나님께 다시 빚어주심이 복임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옹기를 사고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흰놈의 아들의 골자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1,2절) 

토기장이의 집에서의 일을 보이신 후 예레미야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는데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 장의 어른 몇 사람과’ 함께 가시도록 하십니다. 
예레미야가 하는 말의 증인과 청중으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백성의 어른들과 제사장의 어른이라 함은 
교회의 장로나 중직, 원로목회자 정도일 것입니다. 
사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 당시 백성들이 인정하지 않고 
조롱과 질시를 던진 예레미야와 함께 
경고의 선포자리에 함께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의 지위와 삶이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 일이 환영받지 않는 일 이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함께 했습니다. 
생각만해도 감사하고 힘이 솟을 일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일이라면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드려 함께 하겠다고 고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언자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목회자도 동 일합니다. 지금 잘하고 있습니다. 
파이팅! 우리가 지금 잘 따라가고 있습 니다. 
우리가 있잖아요. 위로와 격려는 성도에게 필요하나 목회자에게도 필요합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든일앞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교회 공동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하시드 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서 
거기에서 내가 네게 이른 말을 선포하여”(2절) 

경고의 메시지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선포됩니다. 
여기에는 두 가 지 이유가 있습니다. 
4~5절입니다.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 곳을 불결하게 하며 이 곳에서 자기와 
자 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무죄한 자 의 피로 이 곳에 채웠음이며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첫째,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곳, 
무죄한 자들의 피를 흘린 곳, 자기들의 자녀를 몰록에게 제물로 바쳤던 
불경건의 극치를 보여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처참한 재난을 당해야 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 골짜기를 보고 그 도성이 얼마나 처참한 광경으로 될 것인지를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의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말씀하시 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심판의 주님으로 다가오지 않으 십니다. 
이스라엘 전역사를 보건대 아무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잘못을 했다하더라도 
재앙과 심판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먼저 하신일이 경고의 메시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심판이전에 돌아올 기회를 반드시 주셨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참으신 후에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다보면 신호등이 있고, 주 의 안내표시판이 있습니다. 
급커브길이니 속도를 줄이십시오. 
사고다발지 역 운전조심! 제한속도를 지킵시다. 
다양한 경고표시들이 있습니다. 
언제 사고나 나는가 하면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을때 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늘 건강하 게 살지만은 않습니다. 
그럴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경고등을 주십니다. 
여러모양으로 사인을 주십니다. 
나를 통해서, 가족을 통해서, 주위 사람과 사건을 통해서 사인을 주시는데 
문제는 우리가 그 하나님의 신호를 보지 못한다는데 있습니다. 
계속 여러분 경고사인을 주셨는데 우리는 나는 잘 못이 없는데, 
나는 하나님의 경고사인을 못 보았다고 그럽니다. 

말씀 묵상함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인을 놓칠 수 있습니다. 
깊은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지 못하면 실 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 다른 일에 너 무 분주하면 듣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서 다시 빚으시겠다고 말씀을 주 시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통로, 수로를 막아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영적수로를 뚫어 놓으십시오. 
내가 서 있는 자리가 힌놈의 골짜기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없이 어떤 일이 잘 되어가면 더 조 심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서 있는 땅이 거룩 한 땅, 성소가 되도록 하십시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신앙의 자리가 흰놈 골짜기, 
도벳이 되지 않게 해야 합니 다. 

하나님께서는 옹기를 깨트림과 도벳을 통해서 심판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단단한 옹기를 깨뜨림으로 예루살렘의 심판을 말씀합니다. 
유다 백성들은 우리를 깨지지 않는 단단한 옹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흙은 원하는 모양이 나오지 않으면 다시 빚을 수 있지만, 
단단한 옹기를 하나님이면 충분히 깨트릴 수 있습니다. 

단단함이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과 성숙이라면 좋지만, 
교만이라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아직 나의 신앙이 부드럽고 연해서 다시 빚을 수 있 을때 돌아서고 
회개의 자리로 부르시면 돌아서야 합니다. 
그때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읍으로 도벳 같게 할 것이라”(12절) 

도벳은 예루살렘 성의 온갖 오물을 갖다 내버리는 곳입니다. 
도벳은 우상숭배로 가득할 때 요시야왕이 개혁을 통해서 그곳을 타파하였 고 
피흘린 사람들의 해골을 그곳에 다 버렸습니다. 
도벳은 더러운 오물과 해골로 가득한 혐오할 만한 장소입니다. 
택한 예루살렘을 그렇게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을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안에 믿음으로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은 임했습니다. 
구원은 확실해도 하나님백성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일에는 
여전한 하나님의 책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은 죄악과 악함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분명히 두 려움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자들에게는 복이 되는 줄 믿습 니다. 

오늘도 새벽에 주시는 말씀이 경고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겠 다고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복된 말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