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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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53장 -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 느헤미야강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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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4(화) 새벽기도회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 53장 

이사야 53장은 앞에서 선포한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구원의 날은 어떻 게 이루어질 것인가? 
그 대답으로 댓가없이 거저주어지는 구원이 결코 아니다. 
구원은 여호와의 종의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여호와의 종의 이야기는 가깝게는 바 벨론으로부터 구원을 이루실 이야기가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날의 영적 바벨론인 사탄 의 멸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말씀을 여호와의 종, 메시야이신 그가 하신 일과 우리를 따로 떼서 읽어보았습니다.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고,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고 곤욕을 당하고, 
심문을 당하여 끌려가고 입을 열지 않고 강포를 행치 않 고 입게 궤사가 없고 
악인과 함께 나란히 무덤에 누우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 덕분에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이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당한다고 착각합니다(4절).

이 사실에 대해서 10절 말씀이 이렇게 증언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말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상하게 하고 질고를 당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복 받고 잘 사는 것이라면 감사할 일입니다. 
그런데 나를 향한 것이 상하게 하고 질고를 당하게 하려는 것이라면...
목회자로 부르시고는 상하고 질고를 당하는 것이 사역의 종작점이 된다면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뜻 때문에 상함,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그 결과 믿는 자 누구나 구원을 얻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상함, 질고를 겪게 됨으로 주어진 결과입니다. 

말씀이 주는 도전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른 다는 것은 
내 자아, 고집, 아집이 상하고 질고를 겪어야 되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질고를 당하셨습니다. 
죄 없으신대 육신의 고통을 직접 겪으셨습니다. 
십자가 위해서 아버지께 버림당한 고통을 겪으신 분, 
그래서 모든 인간 고통을 다 헤아리실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내가 다 안다. 내가 너를 안다. 
요즘 고민하며 기도하는 몇 가지 기도제목들이 있는데 
하나님께 여쭙고 기도할때마다 내가 다 안다. 
목사님, 제가 그 마음 다 알아요.
 성도들이 그런 이야기 할때마다 힘이 됩니다. 
그렇다고 어디 제 마음 다 헤아리기가 될까요? 
런데 먼저 제가 겪어야 할 모든 속상함과 아픔을 아시는 분이 
그 마음 다 안다고 하시면 위로의 차원은 달라집니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도 많은 상함과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내가 다 안다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주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가 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우리입니다. 
육신이 편하고 만사형통할 땐 예수님 잊고 있다가 
조금 힘들면 돌아봐달라고 부르짖는 모습보면서 
나만 귀하게 여기는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내 사랑황만 끔직히 사랑하고 자기애로 꼭 찬 내 모습을 보니 
그게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은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그들 때문에 고난당하신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주님이 고난당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이 깨달아지니 53장을 읽어가는 마음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태도가 7절 말씀입니다.
 “어린양과 떨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니들의 말은 다 거짓말이야! 
하나님의 아들인 내게 이렇게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내가 죄 없다는 것 알면서도 네 양심 버리고 
정치적 목적위해 내게 십자가형 선고한 빌라도, 네 이~노옴! 
소리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한마디 없이 다 고난 받아내셨습니다. 
입 열지 않으신다는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신 것이지만 
내가 상하고 질고를 당해도 나 때문에 인류 구원받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잠잠히 그 입 열지 않고 모든 고통 감당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지금 눈 앞에 사람들은 살기등등한 눈 빛과 죽이라는 고함소리들이 있습니다. 
당장 온 몸 찢어져 나가는 처참함이 있을지라도 묵묵히 그 길 걸으신 것은 
부활영광, 인류 구원을 약속하신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고난없이 영광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맛보려면 어떤 모양, 형태이든 고난 감수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시는 것 아닐까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도전이 있습니다. 
이 길에서 고난 감수하면서 의심, 걱정, 불평 내 뱆지 말아야 겠구나. 
하나님의 행하심 의심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께 마음 기울어 다 가 있으니 
하나님께서 행하심을 믿고 참고 기다리는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만 바라보는 삶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 읽고 묵상하면서 
내가 있어야 죽음의 자리에 계신 예수님이 이해되지 않는데도 믿어진다는 것. 
아들 죽이시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는데도 
그 아들의 희생으로 내가 받은 사랑이 너무 생생히 다가오는 것이 믿겨지는 것. 
이것이야 말로 은혜중의 은혜임을 깨닫습니다.

11절, “영혼의 수고”라는 단어가 끝으로 마음에 각인됩니다. 
예수님의 영혼이 수고한 댓가가 그게 나이구나. 
죽어야 하는 나, 십자가에 죽어야 하는게 나인데 십자가 댓가가 나이구나. 
그러니 주님이 내게 가장 소중한 십자가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존재 자체가 십자가 되어 살기를 기대하심을 깨닫습니다. 
눈꼽만큼도 자신 없지만 그것밖에 길이 없음을 압니다. 
평생을 그리해야 하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동안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의 오늘 하루의 고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