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예레미야 2장 -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억하는 것이

  • 느헤미야강
  •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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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수) 새벽기도회 

하나님의 선하심이 능력입니다. 
예레미야 2장

1. 
예레미야 2장부터는 예레미야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9절에 느닺없이 하나님께서 유다백성들과 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방인들도 자기가 믿는 신을 버리지는 않았는데(10,11절) 
유다 백성은 참된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은 2가지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되는 하나님을 버린것과 다른 하나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입니다(13절).
이에 대해 19절은 “네 악이 너를 징계하였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애굽에서 홍해, 광야를 거쳐 약속의 땅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랍고 선하신 역사가 있었고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격하였으면서도 위기 앞에서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다른 나라 애굽, 앗수르에 의지하려고 한 유다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를 하나님을 버린것이라. 악이라 결과는 고통이라고 말씀합니다. 
결론은 고통입니다. 
앗수르를 피하려고 애굽에 붙었는데 애굽의 종이되었습니다. 
피하려고 붙잡은 것이 오히려 나를 옭아매는 종되었습니다.
이방인들도 자신들이 믿는 신들을 배반하지 않는데
참 하나님을 알고 믿는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에 대해 악함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의 삶, 결정적 문제앞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대신 내가 믿고 의지할 다른 것에 소망을 둡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싸우시겠다고 선언하시면 대안이 없는 삶이됩니다.
 
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바꾸었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과는 비교조차되지 않는 나무토막, 돌 덩어리들을 왜 섬겼을까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선하심과 은혜를 망각했기때문이 아닐까요? 

현재 하나님아닌 다른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것은 터진웅덩이라고 내 생명, 목마름 해결하지 못한다고 
깨닫는것에서부터 참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안 넘어지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선하심과 행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향한 거룩함, 순결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내 삶, 
하나님을 향한 영적 순결함이 있는가? 말씀이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합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어떤 매개체도 미워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랑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해도 하나님 그 자체가 아니면 아닌것입니다. 

2. 
예레미야 1,2장에서 주는 큰 은혜가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정체성을 바꿔주셨습니다. 
나는 아이라 말씀을 대언할 수 없다.
아이가 아니라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성벽되게 하시고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해야 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 말씀으로 선지자 직분을 감당케 했습니다.
 아이라 불가능한 능력의 사람이라 할때에 견고한 성읍같이, 쇠기둥처럼, 놋성벽같이 
든든한 존재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정체성을 인식시키고 바꿔주셨듯이 우리의 삶의 정체성도 바꿔주십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인해 세상 정글에서 해메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있기에 하수를 구걸할 필요가 없게 하십니다. 

버겁다고 여기는 것, 하나님앞에서 이토록 귀한 존재인 줄 뼛속까지 자가하지 못해서 
향방없이 달려간적 많았던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은 새롭게 하십니다.
예레미야를 읽어가면서 예레미에에게 임한 정체성을 확인하시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회복함으로 매일의 삶속에서 승리하는 삶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