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이사야 49장 -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 느헤미야강
- 2017-10-18
- 730 회
- 0 건
이사야 49~55장은 메시야에 대한 것을 본격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본문이고,
오늘49장은 두번째 고난받는 종의 노래(49:1~7)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메시야의 사역과 메시지는 이사야가 예언한대로 6장에 있는 말씀처럼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함으로 역시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비록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고(1)
그 입을 칼과 화살처럼 만들어주시지만(2),
많은 사람들에게 그 자신과 그 말씀은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마치 헛된 수고와 같이 여겨지기도 했지만
결국 하나님은 그 수고의 댓가를 주시겠다는 보증을 해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4).
그리고 메시야의 사역은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만 돌아와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메시야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서 만백성을 구원하시는 일이 될 것이다(6).
비록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열왕이 무릎을 꿇게 하실 것이다(7).
이것이 바로 700년 후에 오실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묘사들입니다.
이어 8~13절은 메시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이고 보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장래에 바벨론포로와 회복의 메시지를 주실때에
더 먼 미래의 일인 메시야의 오심과 그의 사역을 통하여
가까이 다가올 유다 백성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시고자 합니다.
이런 메시야와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 속에는 의심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리셨다는 생각이었습니다(14).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그 사랑의 확실성을 증거하시는 말씀이 15~18절입니다.
여인이 그 젖 먹는 자식을 잊지 않겠지만 혹 그들이 잊을지라도 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그 손바닥에 새기셨다! 고 말씀합니다.
두번째 의심은 자기들에 비해서 원수의 세력은 너무나 강력하다는 판단이었습니다(20~21).
포로생활 중에 태어난 많은 자녀들이 우리는 너무 보잘 것 없다고 불평하게 될 때가 올 것을
이사야는 내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열왕들이 섬기게 될 날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22~26).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가 여기에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메시야의 사역이 거부당할 것이라고 예언한대로
예수님은 거부당하셨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수고는 헛된 수고처럼 여겨지는 것 같았지만,
4절 나의 보응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하셨던것처럼
예수님의 십자가 수고는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헛된 것 같았던 죽음이 나를 살리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백한 약속이고 보증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고가 헛된 것처럼 여겨지곤 할때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수고가 헛된 것처럼 보이고 낙심하게 될 때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 앞에 엎드릴 시간입니다.
우리의 눈 앞에 즉각적으로 주어지는 결과들에 의해서 일희일비하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신앙은 하나님께서 결국에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그 말씀 앞에서 하루 하루를 복종시키고 살아가는 삶이기때문입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불신으로 반응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친절하게 당신의 사랑을 확증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참 믿음과 넘치는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기게 해 주실 날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 앞에 아멘으로 무릎을 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2절)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입, 곧 혀를 신체 부위 중에서 가장 부드러운 조직으로 만드셨으나
그 혀가 칼이 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칼이 되어 죄를 도려내고 생명을 살리는 칼이 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생명이 연관되어 있는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 책임있는 태도와 삶의 내용이
누군가에게 신앙생활 유무를 결정짓게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을 칼로 곧 비유합니다.
관절과 골수, 혼까지 찔어 쪼개 생명의 역사를 만들어 낸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존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생명의 언어를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 내게는 익숙하고 편안하다고 하는 말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고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가벼운 농담, 생각없고 무책임한 말, 무책임한 약속 등 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사실은 입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하나님을 향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앞에 서 있다는 신전의식이 약하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재미있고 익숙한 것들이..
누군가는 당연하다고 여기는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된다면
나의 그 말과 태도 무책임성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열왕과 방백을 자녀 삼으실 때 쓰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정말 아이러니합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7절)
“너를 보고”
어떤 <너> 입니까?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너,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너,
관원들에게 종이 된 너 입니다.(7절)
어떻게 세상 왕들이 그런 <예수님을 보고>,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까요?
여호와께서 “존귀하게” 여기셨기 때문입니다.(5절)
입에서 나간 복음에는 날카로운 칼의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2절)
나를 보고 ? 도대체 누가, 이런 나를 보고 교회를 다니고 나의 하나님을 믿고 싶을까?
종종 이런 자책을 잔잔한 호수에 돌 던지우듯 가끔...일어납니다.
오늘 말씀은 내가 존귀한 자임을 더욱 일깨워주셨습니다.
내가, 비록 세상에선 볼품없는 사람일지라도 세상에서 잘 나가는 불신 열왕과 불신방백들이
이런 <나를 보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힘으로 여기면...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니까!
그런 내 입에서 나가는 복음은 날카로운 칼과 같다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히브리서 4장 12절)
- 이전글 이사야 50장 - 하나님께 반응하자 17.10.20
- 다음글 이사야 48장 -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17.10.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