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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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3장 - 두로 너 세가지 잘못했다
- 느헤미야강
- 201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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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로와 시돈은 한 나라입니다. 페니키아 나라의 지역이름입니다. 신약에서는 베니게로 부릅니다. 가장 작지만 부요했던 나라입니다. 이들은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고 3,000km나 떨어진 다시스와도 무역을 했습니다. 이들은 주변 가난한 나라를 향해 어떻게 하면 너희들처럼 가난하게 살 수 있느냐 라며 멸시하기도 했습니다. 7절은 이들을 희락의 성이라 불렀습니다.
이사야는 부요하고 의기양양하던 두로와 시돈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고 슬픈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언을 합니다.
슬피 부르짖을 것이다. 황무하며 집이 없고 들어갈 곳도 없을 것이다.(1절)
다시스는 두로와 시돈과 무역했던 도시인데 이들이 무너지자 더 이상 무역할 수 없어 슬피 부르짖었다는 뜻입니다. 5절에는 애굽도 고통받을 것이다 합니다.
애굽 역시 곡식을 매매해서 이익을 보았던 나라입니다.
이 두로와 시돈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차례로 멸망하게 됩니다.
15절은 그날부터 두로가 한 왕의 연한같이 칠십년 동안 잊어버린 바 되었다가 칠십년이 찬 후에는 기생의 노래같이 될 것이라
두로와 시돈 기생들의 노래는 아무리 왕이라도 70년을 넘기지 못하는데 70년동안 인생을 살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짧은 인생동안 실컫 먹고 놀자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번창하던 두로, 시돈이 애 멸망했을까요? 9절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교만때문이었음을 증언합니다. 특이 이 도시가 멸망한데는 3가지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날 나는 남에게 해를 끼친 적 없고 괴롭힌적도 없으며 사기친 적도 없습니다. 나는 성실하게 살았고, 나와 내 가족이 평안하게 살기위해 부지런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왜 내가 회개하고 예수 믿어야 하는가? 멸망길 가야 하는가?
그 이유에 대한 답을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두로, 시돈 백성들의 관심은 오로지 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가까이 살면서, 이들과 무역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관심, 존경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기 이익이 종교이고 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이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고 믿어야 하는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4;13-16절은 허탄한 자랑을 위해사는 상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장사, 무역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관심없고 풍요만을 꿈꾸는 이들을 허탄한 인생이라 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 나만 행복하면 된다고 여기는 삶에 하나님이 개입하는 순간 평안은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기며 사는 것이 참 행복이고 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이기심 때문입니다.
두로, 시돈문제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동일합니다. 물질에 대해 오직 자기 중심적입니다. 17절은 칠십년 후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있고, 무역을 다시 재개합니다. 그리고 이익을 하나님께 돌릴 줄 아는 민족으로 바뀝니다.
3. 교만함입니다.
교만은 많은 것 가졌으니 이것으로 됐다는 마음입니다. 9절은 모든 영광, 교만은 멸시받게 된다고 말씀합니다.
두로의 죄악에 대해 70년간 잃어버림이 된다고 말씀합니다.
70년이 어디 왕만일까요? 평민 백성도 동일한 경험입니다.
시편 90편은 우리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30년 조금 넘게 사셨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의 의미도 모른채 아버지의 임종과 무덤을 지켜 보았고 삶의 깊은 자락에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안에서 부재라는 빈자리를 채움받기 까지 오랜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속에 부모의 자리가 그럴진대 한 인간이 태어나 7,80년 동안 하나님께 잊혀진 바 된다면 그 삶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앞에서 셈할 때 의와 생명의 면류관이 아닌 기생의 노래처럼 된다면 얼마나 비참한 삶이 될까요? 두로와 시돈의 모습을 보며 내게 맡기신 것들로 자기 중심적이지 않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습니다. 내게 있는 것들로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삶이 너무 중요함을 깨닫습니다. 기생 찬양은 먹고 놀려 살자. 짧은 인생이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 사주면 종종 아빠 먹으라고 건네줄때가 있습니다. 한 입 크게 먹으면 싫어합니다. 자기 먹을 것 적어져서입니다. 그런데 아빠 좋아하시는 구나 싶어 더 먹으라고 주면 더 사주고 싶은게 부모 마음입니다.
어떤 마음이 부모를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것인지 우리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관심갖기, 풍요에 자기 중심적이지 않고 이웃을 생각하고, 교만함을 내려놓고 타인을 사랑하기까지 나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그때 두로, 시돈과 다시스 다시 무역 기쁨이 있었듯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도 큰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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