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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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28장 - 거짓 피난처, 참 피난처

  • 느헤미야강
  • 2017-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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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짐승은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사람에게는 종교심이 있다는 점입니다. 전도서 311절을 보면 사람에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종교심이라고 합니다. 종교심을 가진 사람은 바른 종교를 믿든, 그릇된 종교를 믿든 간에 세 가지의 공통적인 사고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신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둘째로 인간과 신 사이에는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심각한 문제를 다른 말로 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참된 종교 안에는 인간의 죄의식이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죄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나름대로의 피난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새벽에 우리는 내가 의지하고 있는 피난처가 과연 참된 피난처인지 아닌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참된 피난처를 가지고 있다면 죄사함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나라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피난처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비참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1. 본문 15절을 보면 그 옛날 유다 사람들 가운데에도 거짓으로 피난처를 삼고, 허위로 은닉처를 삼은 사람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 말이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찌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15).

이사야 28장부터 35장까지 8개의 장에서는 유다와 앗수르에 임박한 전쟁에 대한 경고 말씀입니다. 본문은 남유다 히스기야 왕이 북이스라엘 앗수르가 멸망직전에 있고, 남유다도 앗수르의 위협앞에 놓이게 되자 애굽과 손잡고 극복하려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위기앞에서 거짓된 피난처를 붙잡은 것입니다. 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참된 피난처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왜 유다는 하나님 대신 거짓 피난처로 방패삼을 했을까요? 오늘날 교회가 타락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1,3절은 북이스라엘의 교만 때문에 멸망하게 되는데 유다도 그 길을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2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 지도자들의 영적 타락입니다(7)

지도자, 제사장과 선지다들이 포도주와 독주로 취하여 비틀거리며 자기 통제를 상실하고, 분별력을 잃고, 쾌락주의에 빠졌습니다.

분별력을 상실하니 잘못된 재판을 합니다. 이것이 삶이 되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과 말씀 갈치는 자에 대한 냉소와 모욕입니다(9-20)

9절에는 그가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누구에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하나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말씀 전하는 이사야를 비웃었습니다.

15절은 사망과 음부와 맹약했다. 그래서 사망과 음부에 가도 형님 아우하면서 사망과 음부가 미치지 않을것이라 했습니다. 사망과 음부를 농담으로 여긴것입니다. 지옥은 이미 꽉 차서 내 자리가 없을거라 합니다. 내세를 가지고 농담을 합니다.사망과 심판이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면 행동이 경거망동하게 되고 그런 삶이 거짓 피난처 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가지로 피난처를 삼습니다. , 세상의 강한 세력, 권력, 인간관계를 피난처로 삼습니다. 세상의 각종 종교들, 철학들, 거짓된 사상들을 피난처로 삼아 나는 아마도 지옥에 가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지 못합니다.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낼 수 없으며, 또한 현세에서 우리가 당하는 어떤 환란과 고통에서도 우리를 건져낼 수 없습니다. 이것은 거짓된 피난처들입니다.

 

2. 그렇다면 참된 피난처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28장에서 놀라운 복음을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16). 하나님께서는 시온, 즉 예루살렘에 한 돌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이 돌은 시험한 돌이요, 견고한 돌이요, 기초돌, 즉 집을 지을 때 기둥이 되는 받침돌입니다. 이 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 933절과 로마서 1011절에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고 선포했습니다. 이 말씀이 시온에 두신 견고한 기초돌은 예수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밑에 피하게 되면 내세에서 심판을 면제받고, 현세에서도 부끄러워서 망하게 될 환란과 고통에서 건짐을 받게 됩니다. 고난중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내세에서 형벌을 피하는 참된 피난처는 예수 그리스도요, 현세에서도 위기를 벗어나는 참된 피난처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곳에서의 우리와 조국이 유다와 같은 신세라고 생각했습니다. 앗수르, 바벨론, 애굽과 같은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조그만 나라 유다와 같은 상황입니다. 유다가 바벨론을 의지할지, 앗수르를 의지할지, 애굽을 의지할지 우왕좌왕 했던 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이고 조국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이 거짓된 피난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도 한낱 부지깽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을 지키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무리 강대국이 쳐들어온다고 할지라도 지키실 것이고, 아무리 작은 나라라 할지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이며, 그 땅의 경제가 번영하는 가운데 영구히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굳게 서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믿지 않는다면 정녕히 굳게 서지 못할 것입니다오직 참된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며, 그 믿음으로 사는 길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주신 도전과 감동이 있습니다. 근래에 우리교회에 등록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들과 학생들이 제법 많습니다. 믿음생활을 한 친구들도 있고 처음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가운데는 배움과 일터, 직장을 통해서 자신들의 피난처를 삼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참된 피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려주도록 우리교회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들이 이곳에 계속 머물러 있든지, 4년 안팎으로 머물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고 젊은이들을 보내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자 복이라고 믿습니다. 이들을 잘 섬기는 것 역시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초석이라고 믿습니다. 이들이 참된 피난처되심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발견할 수 있도록 보내주신 선물 잘 세우고 섬길 때 하나님은 더 큰 그릇으로 복으로 새생명교회를 채우실 것입니다.

 이 축복과 은혜, 사명을 잘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