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간절한 기도, 은혜가 충만한 말씀, 주님의 말씀으로 늘 새롭게 변화되는 새생명교회입니다
아가 3장 - 왕의 사랑
- 느헤미야강
- 2017-08-01
- 866 회
- 0 건
아가는 히브리 언어로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1장 1절에서 알 수 있듯이 ‘솔로몬의 아가’ 즉 ‘솔로몬의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4장 32절은 솔로몬이 삼천 개의 잠언과 일천 다섯 곡의 노래를 지었다고 말합니다. 그 모든 노래들 가운데 ‘노래 중의 노래’가 바로 오늘 말씀의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를 한 단어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일 것입니다. 아가서는 한 남자와 여자사이의 깊고 진실한 사랑 이야기를 때론 아름답게, 때론 대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를 향한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1절).
오늘 본문은 꿈속에서 신랑을 잊어버린 신부의 애타는 마음을 그리는 내용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그가 사랑하는 왕을 찾아 밤거리를 헤맵니다. 여인의 몸으로 밤의 한기와 어두움의 두려움도 잊은 채 오직 그분을 찾아서 헤맵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그의 행방을 물어봅니다. 술람미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준 그분, 왕의 사랑이 한낱 꿈처럼 사라질까 두려웠고 놀란 마음은 진정할 길이 없었고, 떨리는 눈빛은 주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사랑은 간절했습니다. 그때, 그분을 만납니다.
“그들을 지나치자마자 마음에 사랑하는 자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내 어머니 집으로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하였노라”(4절)
자신의 존재가 시작된 곳, 가장 은밀하고 의미있는 곳으로 그를 초대합니다. 술람미 여인은 왕과 깊은 사랑에 빠졌습니다. 환경과 계급을 초월하여 그들은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사랑이 아니었기에, 술람미 여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반응했습니다. 술람미 여인에게는 넘어야 할 문제가 산적했습니다. 현실은 도무지 간격을 매울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사랑에 반응했습니다. 사랑은 반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반응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마치 연인이 상대를 위해 반응하듯, 피곤에 지친 어미가 자녀의 울음소리에 반응하듯 사랑은 반응하는 것입니다.
요일 4장 8절은 다음과 같이 증언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의 속성을 지니고 계시기에,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은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매일 밥상에 오르는 된장찌개를 책으로 본 사람은 그 맛을 분석할 수는 있으나 그 깊은 맛을 볼 수는 없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본 사람은 반드시 그 깊은 사랑에 반응합니다.
6-11절에는 새로운 국면이 전개됩니다. 장소는 결혼식장이며, 왕은 위엄과 호위 용사를 거느린채 술람미 여인을 그의 영원한 신부로 맞이합니다. 이들을 엮은 것은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신분의 벽을 넘은 이유는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모든 은사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고전13;4절 이하는 사랑의 특성중에 첫 번째가 오래참음이고 끝은 모든 것 견디는것이라 했습니다. 사랑은 오래참음으로 시작하여 모든 것을 견디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러므로 사랑 전체는 견디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사랑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사시며 우리의 눈높이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포용해주셨습니다. 여전히 연약하고 패악한 우리를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사랑으로 동일한 마음으로 견디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이제 그 자리에서 견뎌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시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마치 자신의 남편을 반백년간 기다리는 여인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시대와 인종, 학력과 빈부귀천의 여부와 상관없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분을 향한 사랑을 간직하고 견뎌냈습니다. 견뎌냄은 주님의 신부들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술람미 여인같이 보잘것없는 우리를 친히 찾아와 왕궁으로 이끌고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사랑을 허락해주신 주님의 확실한 징표입니다. 그 징표는 받은 사람 외에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의 후렴구는 이와 같습니다. “주님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슐람미를 견디게 해 준 것은 왕과 나누었던 허물없는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허물없는 사랑을 나눈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하찮은 우리를 찾아오시고 새로운 삶을 열어주신 그분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비록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가 재가 가득하더라도 주님께서 반드시 화관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신부들이여, 순결한 사랑을 이어갑시다.
참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실까요?
술람미 여인의 마음을 빼앗듯 빼앗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그녀는 밤 중에도 그분에 대한 꿈을 꾸고 그분을 간절히 찾습니다.
그녀에게 그분과 함께 있는 것보다 더한 행복과 즐거움은 없습니다.
그분과 떨어지면 근심에 쌓이게 되고 다시 만나면 한없이 즐겁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신에게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 라고 묻습니다.
성경은 성도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이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약속을 지키는 분이십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에게 약속을 하고 왕의 행렬을 갖추고 그녀를 혼인잔치로 인도하기 위해서 데리러 갔듯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맞아주실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기다리는 그녀를 찾아온 솔로몬처럼, 그리스도는 기다리는 성도를 찾아오십니다. 진정으로 그 날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이전글 아가 4장 - 사랑은... 17.08.02
- 다음글 자토새 - 흙으로 사람을 지으사 _ 창2;7 17.07.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