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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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9장 - 흑암의 땅에 임한 큰 빛
- 느헤미야강
- 2017-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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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9장은 메시야 탄생과 통치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중에서 북쪽에 위치한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에 임한 흑암 이야기를 합니다.
납달리와 스불론은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에서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지파였습니다. 유다 지파는 자신의 지파에서 메시야가 나올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지파로서, 베냐민 지파는 막내 지파로서 특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납달리와 스불론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땅분배도 제일 부쪽의 변방 지역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올 때 마다 이 두 지파는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치 군사적으로 아람과 앗수르의 침공, 당연히 경제적으로 고난도 큰 지파였습니다. 북쪽에 살다보니 이방종교 영향도 많이 받아 영적인 어두움도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소망이 없고 고통만 있는 지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정치·경제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그늘진 땅에 큰 빛이 비추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큰 빛이 임하자 흑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전에 고통 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사 9:1).
스블론과 납달리 지파를 상징으로 하는 흑암위에 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앗수를 격파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6절).
하나님께서 흑암을 물리치기 위해 보내주신 큰 빛은 바로 이 아기입니다.
당시 아하스 왕을 포함한 당시 유대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문제를 힘의 원리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어두움이 임한 이유가 힘의 부족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힘이 모자라다면 성전에서 금과 은을 벗겨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더욱 정치·군사적인 힘을 의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흑암과 고통이 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죄는 힘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오로지 아기, 바로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해결됩니다. 실제적으로 어둠가운데 있는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소 오심으로 오든 흑암을 빛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도 힘의 논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성도들도 살다보면 흑암과 고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흑암의 문제를 아하스 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힘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게 돈만 있다면 행복할텐데, 내게 건강만 있다면 평안할텐데, 내게 유산을 물려주실 부모님만 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오직 이 아기를 믿고 의지하며 바른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이 아기를 따르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바뀌게 됩니다. 절망은 ‘절대로 안 망한다’는 말입니다.
이 아기 안에는 네 가지 큰 축복이 있습니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3-5절).
첫째, 즐거움(Joy)입니다(3절). 추수하는 즐거움, 탈취물을 나눌때의 즐거움이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안에는 이런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 즐거움은 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둘째, 해방(Liberation)입니다(4절). 하나님께서는 무겁게 멘 멍에를 벗어 던지고 어깨에 놓인 채찍과 압제자의 막대기를 다 꺽어버리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디안의 날은 사사기 7장에 나오는 기드온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기드온의 시대에 수십만의 미디안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추수한 식량을 모두 노략함으로 백성들은 굶었고 숨어서 타작해야 했습니다. 그때 기드온의 300용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켰던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마귀의 세력, 흑암과 고통의 세력에서 승리와 해방을 얻게 됩니다.
셋째, 마음의 평화(Peace of mind)가 있습니다(5절).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5절). 이 아기는 사람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안겨주는 갑옷과 피 묻은 옷을 땔감처럼 불태워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태우시고 용서하시며 마음에 평화를 주는 구세주가 되심을 상징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이와 같은 평화와 용서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아기 안에는 창성함(Enlargement)이 있습니다(3절).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3절). ‘창성하다’는 말은 ‘힘과 세력이 커지고 일이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예수와 바른 관계를 맺은 사람은 번성하게 됩니다.
이 아기가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이런 축복들이 아기 안에 모두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7장부터 계속해서 임마누엘의 은혜를 말합니다. 본문의 6-7절은 이 아기의 본질에 대해서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아기가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Almighty God)’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신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 임마누엘이 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이 아기의 본질이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죄악을 용서받고 절망이 희망이 되며, 흑암은 빛이 되고 실패는 성공과 승리가 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정치적인 문제든, 경제적인 문제든, 가정의 고통이든, 혹은 영적인 흑암이든 간에 임마누엘의 은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모든 것은 다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아기를 우리 인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계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기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억만 리 먼 곳에 떨어져서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문제에 관심을 끄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 아들을 보내셔서 개입하시고 간섭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모르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며 축복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의 삶 가운데 함께 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삶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삶 가운데 구체적으로 역사하시고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날마다 아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시고 빛 가운데 행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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