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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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23장 - 형통 그것은!
- 느헤미야강
- 2017-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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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통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에서 형통은 단지 잘되고 성공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모든일에 하나님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대하는 잘 되는 것에서의 형통을 말한다고 할 때
그 형통함을 누가 주었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하나 한 사람의 성공이 특정한 어느 한 기간 동안의 성공이라면
성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20대에 성공해서 60세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60세 이후 실패했다면 성공이 아닙니다.
어떤 기간동안 성공한 것은 의미 없습니다.
성공 유무는 인생 전체를 보아야 합니다.
요셉을 누구나 성공한 성경속 인물로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형들에게서 노예로 팔리고
보디발 집의 가정총무
감옥에서의 몇 십년기간만 보면
요셉을 성공한 인생도 형통한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형통한 사람으로 믿는 것은
한 가지만 본 것이 아니라 전체를 본 까닭입니다.
창세기 39장에서의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게 되었다고 한 것도 좋은 증거이나
그가 형들이 애굽으로 내려와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들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먼저 보내셨다는
그 고백이야 말로 요셉의 형통을 옳게 증명해주는 대답입니다.
형통은 하나님께서 내 삶속에 개입하셔서
크고 작은 고난과 역사속에서 나를 빚어가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는 그것을 형통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도 하란에서의 20년만 보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야곱 역시 형통한 인생이었습니다.
짧은 어느 한 기간동안의 삶이 아니라
전체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오늘 내 삶의 한 기간이
어렵고 힘들다고 실패한 인생이라 낙심할 이유도 없고,
잘되고 뜻대로 이루었다고 교만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느 삶의 자리에 있든지
아직 내 삶의 전부, 끝안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형통하냐 아니냐의 기준은
한 기간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치 하얀백지에 점을 찍어 놓고는
검은 점 밖에 없다고 말해서는 안되듯,
전체를 보면 흰 것이 더 많고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절은 “정년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형통할 때 다른 사람도 형통하고,
내가 어려울 때 저 사람도 어려우면 덜 낙심됩니다.
그러나 누구나 똑같지 않습니다.
내가 형통할 때 다른 사람이 어렵고,
내가 어려울 때 다른 사람이 잘될 수 있습니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악한자의 형통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부러워 말라고 합니다.
장래, 소망은 오직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주어진다고 전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도 우리가 형통한 삶을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하나님의 처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 말씀대로 사는 것이 처방입니다.
그때 장래가 보장되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매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주도권을 이양해 드리면 이성으로 다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행하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마치 욥이 욥38장 하나님을 대면한 뒤에
질문도 없이 모든 삶의 문제를 해결함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이 형통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형통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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