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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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편 -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
- 느헤미야강
- 2017-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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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26편은 내용을 볼 때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지어진 내용입니다. 1-3절은 이미 돌아오는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을 회고하며 노래합니다. 4-6절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완성을 소망하며 노래합니다. 포로귀환함으로 기쁨을 누렸지만 아직 성전은 재건되지 않은 시점에서 남은 소망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그 구원이 ‘아직 아니’ 완성된 시점을 살아가면서 그 완성의 날을 소망하는 우리들에게 깊은 공감을 줍니다.
1절,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이스라엘이 사울을 초대왕으로 시작해서 다윗과 솔로몬이 통치하던 시대에 태평성대를 누리며 최고로 번창했지만,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함의 때에 남북으로 갈라지고 이스라엘이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되었고, 남쪽의 유다 역시 주전 586년에 바벨론에게 멸망했습니다.
인재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 세상에서 완전히 끝이 난 것 같아보였습니다. 완전히 망해버린 나라의 회복, 무너져버린 성전의 재건 이 모든 일들은 참으로 꿈같은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례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70년 후에 회복케 하실 것을 말씀하신대로 정확히 70년이 지난 BC 516년에 끌려갔던 포로들이 돌아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공동번역은 1절을 좀 더 시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야훼께서 시온의 포로들을 풀어 주시던 날, 꿈이든가 생시든가!”
126편의 고백은 비록 포로 귀환이 고레스 왕의 칙령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이 회복이 어떤 사람때문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고 선언아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행하실때에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2a)고 노래합니다.
저 역시 제 마음속에 품은 꿈 같은 일들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성도님들이 좀 더 건강하면 좋겠고, 이왕이면 가정마다 재정적으로도 좀 더 넉넉하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자녀들과 청년들은 배움과 장래가 잘 열려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참 성도는 그 방법에 있어서 ‘우연’을 기대하거나 ‘사람’을 의존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우리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분은 여호와이심’을 참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인 까닭입니다. 잃어버린 건강? 망가진 삶? 무너진 가정을 누가 다시 세우실 수 있습니까? 낙심과 절망의 마음을 기대와 희망으로 바꾸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성도는 그 이면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시편 126편 시인은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다는 사실 때문에 기뻤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그를 더 기쁘게 하는 것은 포로 생활에서 돌리신 여호와 그분 때문이었습니다.
성도의 입에서 참으로 함박웃음이 터지고 노랫가락이 흘러나올 때가 언제입니까?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해 모든 길을 인도하셨다는 사실, 참으로 여호와께서 나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 여호와께서 내 모든 눈물과 슬픔을 지켜보시며 내 발걸음을 인도하시며 때와 기한을 조절하셨다는 사실, 내 모든 필요에 간섭하시며 참으로 적절하게 채워주셨다는 사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셨던 그 말씀이 하나도 헛되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발견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주변의 사람들조차 “주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일을 하셨다”(표준새번역, 2b)고 말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조롱하던 사람들이 놀라면서 내가 믿는 주님의 능력을 인식하고 인정할 때, 내 모든 수치와 괴로움을 잊고 참으로 즐거워하게 됩니다.
시인은 포로에서 해방되었으나 아직 예전 모습이 온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닌 역사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기쁨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눈앞에는 펼쳐져 있는 것은 돌보는 이가 없어 황무지로 변한 들판입니다. 박토가 된 농토들을 다시 옥토로 가꾸는 고된 일을 해야 합니다. 돌아온 고향에는 반겨주며 친절하게 도와주는 이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낯선 이방인들이 터를 잡고 그들의 재건을 방해하며 위협했습니다.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 아직은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안정합니다.
눈물 나는 현실 앞에 서 있는 시인은 자신의 괴로운 감정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눈물을 흘립니다. 하지만 시인은 동시에 “하나님께서” “꿈꾸는 것 같은 일을 행하신때”를 생각하고, “큰 일을 행하신 때”를 마음에 되새깁니다. 그리고 온전한 회복을 위해 주님께 간구합니다.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사로잡힌 우리가 다시 한 번 번영하게 해주십시오”(표준새번역, 4).
중동지방은 건기와 우기가 있어서, 바짝 마른 땅에도 우기가 되면 순식간에 시내 물로 넘쳤습니다. 이렇게 광야에 비를 내려 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풍성하게 하시듯 그들을 위해 큰일을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한 번 번영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메마름의 시절은 지나가고 은혜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니 은혜의 비가 풍성히 내려지기를 간구합니다.
시인은 이제 눈물 나는 현실에 직면해서 눈에 흐르는 눈물을 훔치면서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5-6)
지금은 한줌의 씨주머니를 가지고 뿌리러 나갑니다. 당장 먹을 양식이 부족하지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힘써 씨를 뿌립니다. 왜 이렇게 합니까? 기쁨으로 거두게 하실 하나님을 아는 까닭입니다. 건기가 우기로 바뀌듯, 마른 땅이 풍성한 물로 넘쳐나듯 여호와께서는 우리네 인생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전시키시되 풍성히 역전시키심으로 함박웃음이 터지고 절로 노랫가락이 입에 흥얼거리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매 순간마다 우리는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감사 제목을 찾습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기쁘게 하는 것은 감사제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감사의 제목들을 주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물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제목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눈물 흘리는 사람도 많음을 압니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울어본 사람은 더 큰 기쁨을 거둘 것입니다. 눈물 나는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 백성답게 생각하고 하나님 백성답게 말하고 하나님 백성답게 행동하는 씨앗들을 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과 가정, 인가귀도와 진로, 취업과 물질 등 모든 문제에 이르기까지 오늘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뿌리고 있는 모든 것들에서 말씀과 기도로 씨뿌림을 시작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꿈만같은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함박웃음으로 웃게 하실 것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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